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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




틸다 스윈튼을 정말 좋아한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어댑테이션'에 나왔다고 하는데, 본 지 오래 되어서 그런지 어떤 역할로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나서 '어댑테이션'을 다시 보게 되었다.
틸다 스윈튼이 어떤 역할로 나오는지만 봐야지, 라는 생각으로 봤는데, 오랜만에 보니 전보다 더 재밌는 것 같아서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게 되었다.

시작부터 엄청 웃기다.
이 영화의 각본가인 찰리 카프먼은 주인공을 자기 자신으로 설정하고, 카프먼이 자신의 전작인 '존 말코비치 되기' 촬영장에 어슬렁거리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찰리 카프먼을 연기하는 배우가 니콜라스 케이지인데, 난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를 떠올릴 때 이 영화부터 떠오른다.
쌍둥이로 이 영화 속에서 일인 이역을 하는데, 자신감 넘치는 동생과 패배감에 쩔어있는 루저 형 캐릭터를 너무 잘 소화해낸다.
한 배우가 연기하는데 두 캐릭터의 매력이 달라보이는 것만으로도 니콜라스 케이지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영화에 나오는 조연으로는 메릴 스트립과 크리스 쿠퍼가 있다.
메릴 스트립이야 말 할 필요도 없이 최고이고, 크리스 쿠퍼는 앞니가 빠진 채 나오는데 카리스마 있게 나온다.
크리스 쿠퍼는 나오는 장면마다 거의 장면을 삼킬만큼 압도적이다.
촬영 중에 크리스 쿠퍼는 자신이 존경하는 메릴 스트립에 대한 존경심이 티가 날까봐 걱정했다는데, 적어도 이 작품 속에서는 메릴 스트립보다도 크리스 쿠퍼가 더 빛난다.

미셸공드리와 만든 '이터널 선샤인'도 물론 좋지만, 찰리 카프먼과 스파이크 존스가 호흡을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
둘이 만든 '어댑테이션'도 참 좋고, 특히 '존 말코비치 되기'는 여전히 찰리 카프먼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이 쌍둥이 형제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예술성과 흥행성 두 가지를 나타내는 카프먼의 두 가지 자아일 수도,
영화 마지막에 정글에서의 추격씬이 영화 전체의 톤으로 봤을 때 튀게 느껴지는 것은, 상업적인 글을 쓰는 동생이 개입되기 때문일 수도,
아니면 이 영화 자체가 카프먼이 자신이 각색에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보는 내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
확실한 것은 카프먼이 만든 시나리오는 영화 속 난초를 찾아 들어가는 정글보다도 복잡하지만 더 재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처럼 카프먼이 많은 고민을 할 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난 그를 응원할 생각이다.
다만 부탁이 있다면 다음에는 직접 연출하기보다는 스파이크 존스와 호흡을 맞추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