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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광란의 사랑 (Wild At Heart, 1990)



태생적으로 거친 남자, 그리고 그를 좋아하는 여자.
딸에 대한 집착이 심한 여자의 어머니는 이 남자를 죽이려고 하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뒤 함께 여행을 떠난다.

영문 제목인 'wild at heart'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완전 거칠게 태어난 이 남자가 개차반으로 살면서 자기의 연인도 위기에 빠지게 하는 이야기인데,
사실 주인공 남자보다도 세상이 더 거칠게 느껴진다.

데이빗 린치 영화 중에서 제일 보기 편한 서사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다.
오즈의 마법사의 변주이기도 한 로드무비인데, 관념적 이미지도 적고, 서사 자체도 보기에 편하다.
데이빗 린치 영화이기에 오히려 편안함이 더 불편하게 다가오기는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 마녀가 등장하고, 엔딩에서는 마녀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의 대사에 나오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와 마녀의 이미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이런 이미지들이 데이빗 린치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보니.

영화가 되게 웃기게 느껴졌다.
특히 엔딩에서는 완전 빵터졌다.
마지막에 하얀 마녀가 나올 때는 정말 엄청 웃겼다.

이들의 이야기가 웃겼던 이유는 이들이 탈출하려는 세게가 내게는 익숙한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이 익숙한 세상에서 왜 굳이 도망치려고 하지.
몸만 컸지 미성숙한 상태의 두 어른인 주인공 커플은 마치 모험을 떠나듯 여행을 떠난다.
위험을 사랑으로 극복하겠다는 인식 자체가 사실 엄청 어리숙한 생각 아닌가.

그래서 영화가 해피 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데이빗 린치 영화 중에 해피엔딩이 없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아무튼 마지막에 하얀 마녀가 나왔을 때 엄청 웃겼던 것도 이 마녀가 악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멍청한 커플에게 사랑의 힘을 일깨워준다는게 얼마나 나쁜 짓인가.
이 어리숙한 커플의 앞날은 사랑에 대한 환상보다도 현실의 퍽퍽함으로 힘들 것이 뻔한데.

세일러(니콜라스 케이지)는 감독에서 나온 뒤 루라(로라런)에게 너의 상상력이 그리웠지만 너의 그 상상력은 여전히 미스테리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루라는 괴상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 괴상한 상상력만큼이나 이들의 행동은 무책임한 판타지에 가깝다.
영화 마지막에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아들의 표정이 어찌나 불쌍하게 느껴지는지.

세일러가 영화 마지막에 차 위에서 루라와 부둥껴안고 러브미텐더를 부르는 장면은 진짜 엄청 웃기다.
중간중간 춤추는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춤은 거의 격투기에 가까워서 웃기다.
두 사람의 몸짓이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월렘 데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이미지로 나올 줄이야.
악랄한 건달로 나오는데 여태까지 본 월렘 데포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로셀리니는 짧게 등장하는데, 영화의 여주인공인 로라런보다도 더 인상적이다.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데이빗 린치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다이안래드이다.
딸인 루라에게 집착하는 엄마로 나오는데, '블루벨벳'의 데니스 호퍼만큼이나 극에서 개성 강한 인물로 등장한다.
특히 립스틱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칠하는 부분은 압권이다.

월렘 데포가 강도짓을 하다가 총에 맞고 얼굴이 스타킹을 쓴 채로 날아가는 장면이나,
도로에서 교통사고 차량을 발견한 뒤에, 터진 뇌를 긁적이는 여자를 구해주려는 부분은 데이빗 린치 답다.
서사와는 별 상관없는 장면인데, 어두운 고속도로와 교통사고의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했다.

데이빗 린치와 '블루벨벳' 이후로 계속 함께 작업하고 있는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도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이다.
재즈부터 팝과 락까지 모든 장르가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중간중간 데이빗 린치 영화 특유의 괴기한 소리가 나오는데, 그 소리 덕분에 역시나 영화가 내내 긴장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데이빗 린치에 대한 편견에서 봤을 때, 제일 그답지 않은 영화라고 느껴졌다.
너무 좋은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몇 개 있었기에 그 이미지들만으로 단편 하나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