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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엘리펀트 맨 (The Elephant Man, 1980)



서커스장에 코끼리를 닮은 남자가 있다.
엘리펀트맨으로 불리는 이 남자는 의사의 도움으로 서커스장을 벗어나서 사람대접을 받게 된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영화 중에서 특히나 애정이 가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데이빗 린치는 사랃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두려움을 잘 건드린다.
영화 속 엘리펀트맨은 어릴 적 엘리펀트맨의 어머니가 코끼리에게 습격을 당한 뒤 그 트라우마로 인해 탄생한, 살아있는 트라우마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펀트맨이 사람처럼 살기를 원하는 장면에서는 연민과 두려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엘리펀트맨을 응원하지만, 괴물에 대한 거부감은 계속해서 학습해온 감정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에 엘리펀트맨이 그림 속 아이처럼, 사람처럼 누워서 자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짠하다.
영화 내내 엘리펀트맨이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자기 자신이 사람이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불편한 자세로 잠에 드는 것이 그에게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괴물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지도.

머리숱이 풍성한 젊은 시절의 안소니 홉킨스를 처음 봤는데, '양들의 침묵' 속 그 한니발 박사나 맞나 싶을만큼 멋있다.
영화 속 안소니 홉킨스를 보고 훗날 조나단 드미 감독이 '양들의 침묵'에 캐스팅했다는데, 영화 속에서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의사가 엘리펀트맨에게 베푸는 호의가 희망고문처럼 느껴져서, 악역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촬영 당시에 안소니 홉킨스는 데이빗 린치 감독이 여러 번 테이크를 가자고 해도 거절하는 등 감독의 말을 잘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텔레비전에서 '엘리펀트맨'을 보게 된 안소니 홉킨스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느끼며 사과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감독에게 썼다고 한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스튜어트 크레그의 미술은 시각적인 면이 중요한 이 영화의 볼거리를 주고,
'더티댄싱'의 그 신나는 음악을 만들던 이가 맞나 싶을만큼 존 모리스의 음침한 음악은 이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에 한 몫한다.
촬영을 맡은 프레디 프란시스는 본래 공포영화를 연출하던 감독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서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장면들조차도 공포스럽게 보여준다.

영화 보고 제일 많이 기억남는 것은 역시나 존 허트이다.
엘리펀트맨을 연기하면서 분장으로 인해서 표정 연기도 제한적으로 밖에 못함에도 불구하고, 엘리펀트맨의 정서를 이렇게 잘 그려냈다는 것이 놀랍다.
유명 여배우로 등장하는 앤 밴크로프토와 존 허트가 마주하는, 영화 후반부의 극장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오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이다.
영화 내내 괴물과 주인, 실험대상과 의사의 관계에 머물러있던 엘리펀트맨의 인간관계가 이 순간에는 사람 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 후반부에 서커스단원들이 엘리펀트맨을 탈출시키는 대목에서 서커스단원인 난장이가 엘리펀트맨에게 운이라고 좋아야지, 라고 말하는 부분도 짠하다.

여러모로 뜯어먹기 좋은 텍스트이다.
프로이트나 계급의 문제, 인간의 존엄성 등 다양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는 영화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보는 내내 엘리펀트맨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된다.
아마 앞으로도 데이빗 린치의 영화 중에서 가장 아끼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