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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

반칙왕 (The Foul King , 2000) 김지운 감독의 초기작을 다시 보았다. 장진영이 나온 순간부터 이 영화는 내게 장진영의 영화가 되어버렸다. 온전히 송강호를 위한 영화이지만, 송강호가 길에서 꺾는 꽃이 바람에 날아가자 다시 주워오는, 프레임 밖에 있는 그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세상 모두 반칙을 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느낀다. 세상이 하는 반칙에 적응 못하고, 마스크를 쓰고 무대 위에서만 반칙을 하는 남자가 있다. 마스크도 포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으려 애쓴다. 그가 아무리 애써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쓴 타이거마스크보다도 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있지만, 우린 그것을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반칙이라고 자기위로를 하며 반칙에 적응해가며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현실에서 반칙을 하지 않으면 도.. 더보기
조용한 가족 (The Quiet Family , 1998) 너무 예전에 봐서, 거의 새롭게 본 느낌이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중 '달콤한 인생'을 가장 좋아한다. 문득 그의 초기작들을 다시 보고 싶어서 보게 되었다. 김지운 감독은 거의 모든 장르를 자기 스타일로 풀어내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장르로 묶이기 보다 '김지운'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의 초기작은 설정의 힘을 빌린, 거의 희곡이 가까운 느낌이다. 연극으로 올려도 충분히 어울리겠다 싶은 소동극이다. 개연성을 의심할 시간에 밀어붙이고, 캐릭터의 전사나 성격을 설명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좋았다. 최민식과 송강호를 한 장면에서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고호경이다. 지금 봐도 정말 보기 드문 유니크한 색을 가진 배우이다. '버팔로66'에 나오는 크리스.. 더보기
끝까지 간다 (A Hard Day , 2013) 안정적인 상업영화는 두 종류로 나눠진다. 잘 기획되었거나 각본이 돋보이거나. 물론 둘 다 잘 갖춰져야겠지만, 제작과 연출 중 어떤 부분의 힘이 커보이냐에 따라 개성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끝까지 간다'는 플롯이나 캐릭터, 각본에 있어서 탁월한 부분이 많은 영화다. 연출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각본이 가진 리듬 자체가 워낙 좋았다. 시작부터 시종일관 달린다. 이러한 에너지 앞에 설명적인 부분도 거의 없이 달린다. 영화의 초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관객에게 몰입을 줄 수 있는 각본의 탄탄함에 대해서. 더보기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Lazy hitchhikers' tour de europe , 2013) 스스로를 잉여라고 지칭하는 이들이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여행을 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이들의 여행과정이 낭만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철저하게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중간에 여행에서 이탈한 이들의 현실적인 순간들에 더 마음이 많이 갔다. 현실에 너무 발을 깊게 담군 것일까. 인간극장의 한 에피소드 같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었지만, 이 영화를 온전히 영화로 기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겟다. 청춘이기에 가능한 선택, 노력하는 자를 구원하는 세상에 대해 보여준다. 한없이 낭만적인 덕분에, 오히려 보고나서 심각하게 냉소적으로 바뀌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낭만의 선을 스스로 정하기 시작한걸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