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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화

라임라이트 (Limelight , 1952) 찰리 채플린 작품을 정말 오랜만에 봤다. 그의 무성영화가 익숙하기에, 유성영화에다가 자신을 회고하는 듯한 이 작품은 낯설었다. 자신의 현상황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보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습을 이런 톤으로 표현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자신이 대중에게 외면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감독은 영화로 말해야 한다. 흔한 말이지만 이 말을 실천하는 건 쉽지 않다. 찰리 채플린은 그것을 해냈고. 더보기
이다 (Ida , 2013) 영화도 지구력이 필요하다.자연스럽게 짧은 러닝타임을 선호하게 됐다.특히 정적인 분위기가 예상되는 영화는 러닝타임까지 길면 아예 볼 엄두 자체가 안 난다. '이다'는 한 시간 반의 짧은 러닝타임 뿐 아니라 따라가기 어렵지 않은 서사와 화면을 가지고 있다.덕분에 굉장히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특히 후반부에 이다가 이모집에 다시 찾아온 장면부터 벌어지는 일들은 매혹적이다.노골적이기보다 절제해서 오히려 감정을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비극적인 역사를 한 개인의 삶으로 아주 잔잔하게 보여준다.인물의 일상을 무리하게 인물에게 포커스 맞춰서 다루지도 않는다.충분히 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서도 절제한 덕분에 관객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졌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이 누군가의 죽음 위에 놓인 것이라는 걸 또 다시 .. 더보기
아티스트 (The Artist , 2011) 아름다워서 감탄했던 영화들은 많다.그러나 아름다워서 울어버리기까지 하는 영화는 드물다.최초로 그랬던 건 이명세 감독의 '형사'였다.늘 영화의 출발을 물으면 '형사'라고 답한다.그리고 그 다음작품을 만났으니, 바로 '아티스트'다. 난 무성영화를 거의 못 봤다.무성영화 세대가 아니기에 낯선데, '아티스트'를 보면서 무성흑백영화의 매력을 처음으로 느꼈다.내내 흐르는 음악이 큰 기능을 하고,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이 대사 이상으로 움직인다.영화 시작 후부터 이유도 없이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서사도 익숙한데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다루는 것이 낡은 것이 되었을 때의 정서는 '패왕별희'와 비슷하지만 '패왕별희'를 보면서는 사실 큰 감흥을 못 느꼈다.아마 음악과 두 배우의 힘 때문일 것 같다.베레니스 베조는 .. 더보기
네브래스카 (Nebraska , 2013) 알렉산더 페인이 좋은 이야기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의 영화들에 엄청나게 공감한 적은 없다.그저 잘 짜여진 이야기이지, 내 삶에 들어온 이야기로 느끼진 못했다.'네브래스카'는 흑백이기까지해서 더더욱이나 기대를 안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걸작은 이런 식으로 만난다.지금 내가 가진 화두가 너무 잘 맞는 작품이다.교복 입던 시절에 '사이드웨이'와 '어바웃 슈미트'를 봤기에 다시 봐야겠다고 느껴질 만큼, 알렉산더 페인의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만큼 이 작품이 좋았다. 아버지가 딱 봐도 스팸인 것 같은 광고지를 보고 당첨된 거라고 믿고 네브래스카로 이동하려고 한다.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들이 동행한다.이전작과 마찬가지로 로드무비 형식을 통해, 내내 위트 가득하게 삶을 바라본다.아주 조금의 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