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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보일

127 시간 (127 Hours , 2010) 창작에 있어서 실화의 힘은 크다. '127시간'을 보며 다시금 느낀다. 대니 보일은 감각을 극대화하는데 능한 감독이고, 조난 당한 누군가의 시간을 영화로 풀어내는데 있어서 대니 보일은 탁월할 수밖에 없다. 플래시백이나 판타지 장면을 많이 삽입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함에도, '127'시간은 굉장히 영리하게 플래시백을 사용한 작품이다. '베리드'가 떠올랐지만 '베리드'가 플래시백 없이 전개했다는 미덕을 빼면, 영화 자체는 '127시간'이 더 좋았으니까. 후반부에 팔을 자르는 장면에서는 보기만 해도 실신하는데 실제로는 어땠을까 싶다. 조난당할까봐 여행을 안 가거나, 여행 때 무엇인가 잔뜩 들고 가는 게 능사는 아닐 거다. 무슨 상황에서나 대비하려면 결국 판단력과 이겨낼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건 하루 아침.. 더보기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 , 2008) 몇 년 전에 몇 장면만 지나가듯 보고, 영화 전체를 작정하고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원작소설도 마찬가지로 앞부분만 좀 읽고 끝까지 못 읽었다. 원작소설을 읽고 봤다면 많이 달라보였을까. 어쨋거나 영화 자체는 좋았다. 작위적일 수 있는 부분은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삶의 속성을 생각하면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다. 삶과 퀴즈의 공통점을 영리하게 풀어낸 방식이 좋았다. 우리의 삶은 늘 문제를 푸는 식으로 진행하니까. 특히 인상적인 건 사이몬 뷰포이의 각색이다. 소설 분량만 봐도 어마어마한데 더할 것과 덜어낼 것을 이렇게 잘 구분해낸 게 놀랍다. 각색은 새로운 각본을 쓰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창작의 영역임을 다시금 느낀다. 더보기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 1996) 대니 보일의 작품 중 가장 알려진 작품이지만, 내 취향에서는 다른 작품들이 좀 더 끌리기는 한다. 하루동안 그의 작품을 네 편 연달아서 봐서 판단력이 흐른 상태이긴 하다. 며칠 영화에 대한 감상이 식고 나면 나름의 기준이 명확해질 거다. 좌약형 마약을 찾아 변기통 속으로 헤엄치거나, 마약을 끊으려고 집에 갇혀서 각종 환각에 시달리는 장면은 명성 만큼이나 좋았다. 그러나 가장 좋았던 건 후반부에 돈가방이 등장한 이후부터다. '쉘로우 글레이브'의 감성이 떠올라서 더 좋기도 했고. 이완 맥그리거를 비롯해서 패거리를 연기한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 같이 좋았다. 후속편에 대해서는 혹평이 더 많지만, 20년 뒤에 찾아온 속편은 팬서비스로서 최고가 아닐까 싶다. 며칠 차이를 두고 본다면 그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지려나... 더보기
쉘로우 그레이브 (Shallow Grave , 1994) 세 사람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은 새롭게 룸메이트를 구한다. 그런데 그 룸메이트가 다음날 죽는다.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엄청난 액수의 돈가방을 남기고 죽는다. 셋은 고민하다가 결국 시체를 묻고 돈가방을 갖기로 한다. 어떻게 이렇게 데뷔작부터 탁월할 수 있을까. 대니 보일과 비슷한 시기에, 90년대에 함께 데뷔작을 낸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과 비교해봐도, '쉘로우 그레이브'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충분히 뻔한 설정일 수 있음에도 대니 보일은 영리하게 극을 풀어낸다. 물론 각본을 쓴 존 호지의 공도 크다. 제목의 뜻은 '얕은 무덤'이다. 실제로 시체도 얕게 묻었고, 이들의 관계도 얕은 무덤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굳이 돈가방의 등장이라는 대형 사건이 아니어도 이미 많은 균열 속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