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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10분 (10 Minutes , 2013) 악몽 같은 영화다. 보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 '마터스'나 '미스트' 같은 공포 장르도 아닌데 리얼리즘에 가까운 직장생활 묘사 때문에 힘들었다. 이곳은 말은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 이 대사가 많은 걸 함축한다. 말을 따라가게 되면 그 끝에 이르는 곳은 책임이 없는 현장이다. 분명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가야하는 조직인데 왜 서로 싸워야만 하는가. 부서별 기싸움 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생산적이다. 건강한 견제와 갈등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건 구성원들이 제일 먼저 느낀다. 이상적인 회사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신이 견딜 수 있느냐다. 그런데 점점 견딜 수 없을 만큼 최소한의 보호선이 낮아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하루 중 큰 시간을 .. 더보기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친구가 통신사 포인트가 남는다고 영화 볼 생각이 있으면 보라고 했다. 이번달 말에는 볼까 했던 '벌새'를 예매했다. 좋다는 평이 많은데, 실망할까봐 최대한 기대를 안 했다. 비가 유난히도 많이 왔고, 장우산을 극장에 두고 갈까봐 걱정했다. 좌석 밑에 장우산을 둔 채,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 우산 분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마감 때문에 보는 영화는 대부분 예전영화라서 집에서 스트리밍서비스로 본다. 극장에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극장에 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건 아이러니 하다. 극장 가는 길에 본 심보선 시인의 에세이에는 벌새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벌새'는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마음에 크게 남을 작품이다. 김새벽이 나올 때는 .. 더보기
우리 손자 베스트 (Beaten Black and Blue , 2016)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는 과소평가 받은 작품이다. 얼떨결에 핏줄이라는 이유로 모인 낙오자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버전의 '가족의 탄생' 같은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연기가 좋아서 캐릭터들 보는 재미가 컸다. 엉성한 부분들을 매력으로 채우는 법을 잘 아는 작품이었다. '우리 손자 베스트'도 비슷한 장단점을 가졌다. 마지막까지 설득력 있게 전진한 작품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캐릭터들의 매력이 커서, 캐릭터를 통해 심연에 도달하는 순간들이 있다. 세상이 혐오하는 집단에 속한 개인들, 아무도 그들의 사연에 관심 없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그들의 배경에 대해 생각해봐야만 한다. 그들의 배경에 자리 잡은 소외감이 비춰지는 순간, 안하무인이던 그들의 외로움과 슬픔이 보인다. 사랑이 있다면 모두 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