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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벽

풀잎들 (GRASS , 2017) 오랜만에 영화를 볼 때 기준이 늘 러닝타임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현실이므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고르다가, '풀잎들'을 봤다. 이유영은 짧게 등장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민희의 딕션이 멋지게 바뀐 분기점이 된 작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매 작품마다 나오는 홍상수스러운 인물, 이번 작품에서는 정진영이다. 나중에는 아예 안재홍과 공민정처럼 비교적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홍상수가 좀 더 젊었을 때 젊은 연인을 다뤘던 것처럼. 여전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의 홍상수에게 썩 호의적이지 못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틸컷 같은 이미지는 과하다. 이유영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김명수의 그림자를 보여주거나 하는 장면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홍상수는 실체를 보여줄 때 흥.. 더보기
벌새 (House of Hummingbird, 2018) 친구가 통신사 포인트가 남는다고 영화 볼 생각이 있으면 보라고 했다. 이번달 말에는 볼까 했던 '벌새'를 예매했다. 좋다는 평이 많은데, 실망할까봐 최대한 기대를 안 했다. 비가 유난히도 많이 왔고, 장우산을 극장에 두고 갈까봐 걱정했다. 좌석 밑에 장우산을 둔 채, 영화에 대한 기대보다 우산 분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마감 때문에 보는 영화는 대부분 예전영화라서 집에서 스트리밍서비스로 본다. 극장에 가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극장에 가는 일이 줄어든다는 건 아이러니 하다. 극장 가는 길에 본 심보선 시인의 에세이에는 벌새를 언급한 대목이 있었다. 좋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벌새'는 올해 본 한국영화 중 가장 마음에 크게 남을 작품이다. 김새벽이 나올 때는 .. 더보기
만신 (MANSHIN: Ten Thousand Spirits , 2013) '사이에서'와 '영매'는 다큐멘터리이고, '만신'도 기본은 다큐멘터리인데 극영화적인 지점들이 중간중간 들어간다. '사이에서'는 이해경을, '만신'은 김금화를 다룬다.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른 무속인인지, 계열 같은 게 다른 건지는 봐도 잘 모르겠다. 김금화의 과거를 재연하는 부분을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가 시대순으로 보여주는데 김금화가 일방적으로 구술로 했을 걸 상상하면 좀 더 흥미로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보고 나서 '사이에서'가 좀 더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전적으로 극영화일 거라고 기대하고 '만신'을 봐서 그런 것 같다. 박찬경 감독이 형 박찬욱 감독과 함께 만든 단편 '파란만장'이 굉장히 흥미로웠기에 더 그랬을지도. 박찬경 감독의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의 경우에는 극장에서 봤.. 더보기
그 후 (The Day After , 2017) 좀 놀라웠다. 전혀 기대를 안 했으니까.'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 홍상수가 연출자 이상으로 과잉된 모습을 보이는데 실망했고,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이방인 이자벨 위페르는 이전 배역들 때문에라도 내가 홍상수 영화에 실망한 이유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후'는 그 지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아마 김민희에 포커스를 맞추다가 사이드로 조금 빗겨나가면서 홍상수의 이전 스타일이 다시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자전적 요소 같은 건 떠나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정서를 다시 만났다.언제나 그의 데뷔작에 보여주는 정서를 선호했기에 반가웠다.다시 생생하게 움직이면서 죽음의 기운이 흐른다. 김새벽의 대표작이 '한여름의 판타지아'인 것도 몰입에 도움이 됐다.그녀의 이전 배역이 떠오른 덕분에 오히려 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