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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봉

풀잎들 (GRASS , 2017) 오랜만에 영화를 볼 때 기준이 늘 러닝타임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현실이므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고르다가, '풀잎들'을 봤다. 이유영은 짧게 등장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민희의 딕션이 멋지게 바뀐 분기점이 된 작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매 작품마다 나오는 홍상수스러운 인물, 이번 작품에서는 정진영이다. 나중에는 아예 안재홍과 공민정처럼 비교적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홍상수가 좀 더 젊었을 때 젊은 연인을 다뤘던 것처럼. 여전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의 홍상수에게 썩 호의적이지 못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틸컷 같은 이미지는 과하다. 이유영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김명수의 그림자를 보여주거나 하는 장면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홍상수는 실체를 보여줄 때 흥.. 더보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 2015) 정재영이 홍상수 영화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걸 확인한 영화다.술 취해서 대화로 핑퐁하는 부분의 리듬이 너무 좋았다.다만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반응을 앞뒤에 배치했는데, 뒷부분의 초반은 설정상 필요했지만 루즈하게 느껴졌다.김민희의 연기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보다 이 작품이 더 낫다고 보고, 적은 분량임에도 고아성의 존재감이 컸다. 늘 그의 영화보고 궁금한건데, 진짜 술자리에서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보기
밤과 낮 (Night And Day , 2007) '밤과 낮'을 보기 전에 걱정한 건 어차피 동어반복인 홍상수의 영화의 러닝타임이 어떻게 2시간 30분이 될 수 있는가, 였다.그러나 결론적으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로 거의 가장 좋았던 작품이었다. 북한에서 온 유학생 역할을 맡은 이선균은 잠깐 나오는데도 너무 웃겼다.이선균 목소리로 북한사투리라니.오랜만에 얼굴 보는 황수정도 반갑게 느껴졌다.'허준'으로만 기억된 배우가 이런 대사들을 소화하다니. 최근작들로만 홍상수를 기억하다가, 청어람과 영화사 봄의 타이틀에 있고, 영화촬영지도 파리라는 것까지 여러모로 낯설었다.배경이 파리인 건 썩 중요하지 않다.여전히 동어반복이다.그러나 홍상수의 영화는 그걸 알고도 보게 되는 영화니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언급한 이유는, 그의 작품 중에서 서사가 뚜렷.. 더보기
자유의 언덕 (HILL OF FREEDOM, 2014) 홍상수는 항상 시간에 대해 말해왔다. 홍상수는 시간의 속성에 대해 가장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감독이다. 그의 즉흥적인 작업스타일이 유효할 수 있는 것도 그가 항상 시간에 대해 말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업 전에 카세료에게 일본에서 책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마침 가져온 책의 제목이 '시간'이었다고 한다. 완벽하게 세팅한 감독들에게도 풀기 힘든 이야기들이, 홍상수의 시선 안에서는 우연을 통해서 쉽게 풀어지는 이유는 그가 말하려는 메세지 때문일 것이다. 그는 항상 시간에 대해 말하고, 필연 같은 우연에 대해 그려낸다. 남들이 하나의 인위적인 세계를 구축할 때, 그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삶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편지를 읽는 이가 편지를 떨어뜨리고, 순서가 뒤바뀐 편지를 읽게 된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