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은교



아쉬움이 많았지만 감동적인 부분 또한 많았다.

일단 아쉬웠던 부분들.
박해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박해일을 보면서 이적요가 아니라 연기하고 있는 박해일을 느낀다.
박해일이 참 열심히 분장을 하고 목소리를 깔고 연기에 임하고 있구나.
분장과 내내 어색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때문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차라리 이적요의 나이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문제는 이적요 나이에 맞는, 그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 중에 투자를 받아낼 만한 배우가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박해일에게 분장을 시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박해일이 젊은 이적요를 연기하는 부분은 참 근사하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어차피 이적요의 욕망이 보여주는 젊은 시절과 현재의 싱크로율은 중요하지 않다.
세월이 바꿔놓았을 얼굴이자 욕망이 만들어낸 얼굴이 얼마나 비슷한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김무열이 맡은 서지우의 경우에도, 서지우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굳이 그렇게 길게 천천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화차'에서 마지막에 김민희가 보여준 모습과 흡사하고, 두 장면 모두 그래서 아쉽다.
차라리 이 사건을 빠르게 보여주고 이 사건이 주는 파장을 천천히 보여주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은교가 생일케이크를 가져와서 발코니유리를 사이에 두고 이적요와 마주한 장면,
난 그 장면으로 이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은교가 잠긴 발코니유리를 열어달라고 하는데, 사실 그 순간에 두 사람 사이에 유리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사람은 이적요가 아니라 은교이다.
이적요의 욕망은 은교의 작은 표정과 몸짓을 핑계 삼아 꿈틀거리고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늙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렇지만 세월은 우리를 아주 크게 뒤흔들 수 있는 녀석이다.
욕망은 나이 먹지 않고 평생을 우리 곁에 머물지만, 세월은 욕망과 달리 우리의 보폭따위는 생각해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나간다.

은교가 이적요에게 헤나를 해주는 장면에서 무릎을 베고 누워서, 자신의 늙은 살가죽을 잊은 채 오직 욕망이 이끄는 대로 은교와 살을 맞대는 상상을 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황홀경이다.
은교가 자 이제 눈 뜨세요, 라는 말을 하고 이적요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은교의 무릎에서 시작된 욕망, 그 욕망이 이끈 최면은 은교의 짧은 말과 함께 끝이 난다.
이제 다시 상상에서 깨어나서 현실이다.
여전히 숨쉬는 욕망에서 깨어나 마주한 껍데기는 늙고 축 늘어져있다.

세 인물의 균형이 그리 잘 맞는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서지우가 이적요에게 가진 열등감과 애정 사이의 묘한 감정, 은교가 이적요와 서지우에게 느끼는 감정들, 이적요가 서지우와 은교를 대하는 태도들까지, 이것들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세 명 모두 매력적인 캐릭터이고,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이 많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적요에게만 집중하기에는 서지우 캐릭터가 만들 수 있는 좋은 갈등지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김고은는 정말 은교 그 자체이다.
듀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책 속에서는 거의 말하는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 캐릭터가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나올 줄이야.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어떻게 채워질지 참 궁금해진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소심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욕망의 줄다리기, 서로에게 줄을 당기라고 떠넘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 모두 그 누구보다도 그 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다.
그리고 그 팽팽한 줄 덕분에 우린 지금도 하루하루 견디면서 세월의 보폭에 적응해가며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