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usic

고찬용 - 바다




맑은 파도는 적색 향기와
붉은 화음의 노예가 된 듯 취했다
작은 바람들이 내 귓가에다
자신의 비밀을 아주 작은 피리의 음성으로
속삭이곤 사라져버렸다

눈 감고 모래 위에 누웠다
밤이 온다. 바다 저 위 어둠으로 가득 찬 꿈의 밤

난 혼자 너무 외로워
단추를 몇 개 여미어본다
애틋한 달이 날 옆 눈으로 자꾸 쳐다봐
나는 너무 부끄러워

저기 빼곡하게 선 잠든 배들과
내 청춘과 내 현실이
왜 이리 같은 운명처럼 느껴질까

또 그런다 난 외롭다 난 슬프다
모든 게 너무나 아프다는 말
새는 또 다시 맑은 바다 위를 힘껏 난다

나른한 눈부신 바닷가
바쁜듯 화내는 뱃고동 소리에 눈 떠 다시 바다를 봤다

난 혼자 너무 외로워
단추를 몇 개 여미어본다
뜨거운 태양이 날 비웃는 듯 히죽거려
나는 너무나 부끄러워

저기 빼곡하게 선 잠든 배들과
내 청춘과 내 현실이
왜 이리 같은 운명처럼 느껴질까

또 그런다 난 외롭다 난 슬프다
모든 게 너무나 아프다는 말
새는 또 다시 맑은 바다 위를 힘껏 난다



여행.
별로 안 좋아한다.
당위성이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떨기에, 여행에 당위성 부여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

여행은 참 좋은 것이란다!
말은 쉽지.
여행 가서 감흥을 못 느끼면 죄인으로 만드는 그 명제가 정말 몹시도 싫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난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무전여행 식으로 눈 뜨고 충동적으로 갔던 강원도 화진포보다, 20년 넘게 산 우리 동네를 산책하다가 새로운 도서관을 발견했을 때가 훨씬 더 감동적이었다.
내가 거지꼴을 하고 밟았던 강원도 화진포보다, 매일 가던 도서관에는 있지도 않던 신간도서들이 가득한 새로운 도서관이 훨씬 더 반갑고 좋았다.
파라솔 빌릴 돈이 없어서 팔이 검게 타들어갈 때까지 화진포에서 모래성을 쌓았던 선택보다, 충동적 여행을 유발한 영화 '파이란' 속 화진포를 가슴 속에 간직했다면 지금 내 기억 속 화진포는 꽤나 낭만적이었을 것이다.
물론 낭만을 깨는 작업이야말로 여행하는 이의 숙명이겠지만.

아무튼 여행을 그리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내게 그래도 좋은 것이라면 쌀쌀한 바다가 있겠다.
연극이 끝나고 밤새 연극뒷풀이하고 동기들과 비몽사몽 부산에 갔던 것이 앞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 가는 영화과 학생들 사이에 껴서 함께 갔는데 버스에 오래 앉으니 허리는 아프긴 했지만 거의 기절하듯이 자서 금방 오갔던 것 같다.

아무튼 애초에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타이틀 무시한 채 깔끔하게 영화보기는 포기했다.
남들은 부산국제영화제 보러가서 영화도 안 보고 뭐했냐고하지만 영화표 구하려고 기다리는 시간에 좀 더 쉬고 편하게 부산구경하는 것을 택했다.
다행히 동기 중에 하나라도 더 보려고 뛰어다니는 유형의 사람은 없었다.
우린 정말 푹 자고, 잘 먹고, 천천히 여유있게 돌아다녔다.

동기들과의 여행, 그 타이틀은 식도락 여행!
정말 보이는 족족 먹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먹던 돼지국밥과 그리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더 맛있게 느껴졌던 돼지국밥.
부산에 온 티를 내려면 꼭 먹어야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던 음식인 밀면.
남들은 씨앗호떡 먹어봐야한다고 하는데 우린 그냥 서울에서도 흔하게 파는 호떡 먹으며 잘도 돌아다녔다.

더러운 물에서 수영하는 것과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는 내게 여름에 바다로 휴가를 가자는 것은 거절할 수 밖에 없는 제안이다.
내 기억 속에 즐거웠던 바다는 하나같이 가을이나 겨울바다였다.
쌀쌀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는 바다.

부산여행의 하이라이트도 결국은 바다였다.
밤에 동기들과 함께 천천히 해운대를 걷고,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는 시간이 좋았다.
바다 끝에 있는 호텔은 얼마나 비쌀까 궁금해하며 호텔 앞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아무튼 한적한 바다를 쌀쌀한 바람 맞으며 걸으니 참 좋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찾아온 탕웨이와 금성무를 먼발치에서 바라본 것보다 훨씬 더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탕웨이와 걸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무튼.

아침에 허름한 숙소에서 일어나서 몇 분 걷다보면 바로 해운대가 보인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신발에 묻는 모래조차도 소중하게 느껴질 만큼, 바다가 가깝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느꼈다.
여름휴가철에 왔으면 지옥처럼 느껴졌겠지?

고찬용의 앨범을 계속해서 들었는데 '바다'라는 곡이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제목이 뭔지도 모르고 앨범을 계속해서 들었는데 들으면서도 내내 해운대가 생각났다.

몇 년 뒤에 동기들과 다시 부산에 가도 즐겁게 놀 수 있을까.
다시 함께 여행을 갈 수는 있을까.
계속 얼굴 보며 연락하며 기억하며 살 수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