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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토니 타키타니 (Tony Takitani , 2004)


짧은 러닝타임 때문에 봤다.

주변에서 권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영화를 본 뒤에 원작이 있다는 정보를 보자마자 하루키가 떠오를 만큼,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이들이라면 그를 떠올리게 하는 여백이 가득한 작품이다.

수평이동하는 숏이 많고, 음악과 나레이션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름다운 음악이 연이어 이어지고, 니시지마 히데토시의 나레이션은 무게를 잡아준다.

게다가 중간에 인물들이 직접 나레이션을 읊는다.

방백이라고 하기에도 애매모호하지만, 극의 기이함을 극대화한다.


미야자와 리에와 이세이 오가타는 각각 1인 2역을 한다.

이시에 오가타는 토니 타키타니의 아버지 역할까지 하는지는 영화를 다 본 뒤에야 알았다.


미야자와 리에가 좋은 배우라는 걸 다시 확인했다.

배우에 빠진 건 참 오랜만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평작이라고 불리는 '하나'가 좋았던 것도 그녀 덕분이었고, '렛츠락, 죽어서 하는 밴드'에서 그녀가 나오는 짧은 순간에는 울컥했고, '종이달'은 그녀가 만들어낸 걸작이다.

늘 감독을 중심으로 영화를 고르지만, 당분간은 미야자와 리에의 작품들을 볼 거다.


삶에서 거의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사랑 없이 산 시간만큼, 지금 옆에 찾아온 사랑이 사라진 뒤를 또 다시 걱정한다.

운명은 애석하게도 그런 걱정이 다 사라질 때쯤 시련을 주곤 한다.

그녀가 남겨준 옷들, 그녀의 강박이 남긴 흔적은 그녀에 대한 가장 강한 단서들이다.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 그녀와 비슷한 체형의 여성을 고용하는 심정이란 어떤 걸까.

자신이 그 옷을 입어볼 수 없고, 그 옷을 하나하나 태우거나 팔면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일까.


어쩌면 대체할 대상을 찾으려는 게 아닐까.

당장 마음에 가득한 아내를 단숨에 없앨 수 없으니, 그 큰 부분을 물리적으로 대체할 존재를.

아내가 산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을.


토니 타키타니는 다시 외로워졌을까, 아니면 한번 느껴본 따뜻함 때문에 결국 누군가를 다시 찾게 될까.

누군가를 찾는다면 아내와 닮은 사람이었을까.

이젠 옷에 대한 취미가 없는 이를 만날까.


슬픈 감정들을 아름답게 그려낸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건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