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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클레어의 카메라 (La camera de Claire , Claire's Camera , 2016)


홍상수 영화에서 늘 죽음이 보인다고 느낀 건 인물들이 자신의 권위와 상관없이 미친듯이 기본적인 욕망만 쫓기 때문이다.

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

그런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함께 연출자가 전면에 나오는 느낌이 들고, 죽음이 아예 노골적으로 캐릭터로 등장한다.

'클레어의 카메라'도 비슷하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은 그래도 다른 인물로 제법 분산되어서, 연출자의 편애에 가까운 애정의 시선은 좀 덜하다.

그러나 후반부에 장미희 캐릭터의 지나간 언어가 아예 프레임 안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당혹스러웠다.

홍상수의 노골적인 면은 캐릭터의 대화 속에 섞일 때 좋지,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와 거리가 멀다.


중간에 장미희와 정진영이 둘의 관계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너무 통속적이라 놀랐다.

이런 대사가 홍상수에게서 나왔다니.

그나마 이 시퀀스 후반부에 장미희가 스스로에게 과거에 예뻤으니 예뻐해달라는 대사에 이르러서는 홍상수다웠다.

후반부에 정진영와 김민희의 대화에서 정진영이 홍상수스러운 설교 비스무리한 걸 뱉는 장면에서 그나마 웃을 수 있었다.


클레어가 찍은 사진 중에 김민희가 찍힌 사진을 보고 장미희가 보여달라고 한 뒤에, 장미희 손에 있는 김민희 사진을 보여준다.

난 홍상수 영화에서 이런 클로즈업을 본 적 없다.

이게 홍상수 영화가 맞나 싶었다.


홍상수가 전면에 나선 느낌이 정진영을 볼 때마다 너무 들었다.

그전에 문성근, 이선균, 정재영, 유준상이 연기할 때는 외적인 면 덕분에라도 홍상수를 덜 떠올릴 수 있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비해 몰입이 방해되는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의 매력이 떨어지는 작품이다.


칸에서, 이자벨 위페르가 등장하고, 홍상수와 외적으로도 너무 닮아보이는 정진영이 등장한다.

이자벨 위페르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녀가 선생님으로 등장한 '다가오는 것들'이 떠올라서 줄거리가 섞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유령들이 배회하는 느낌이다.

늘 죽음에 대해 생생한 기운으로 말하던 그가, 이젠 진짜 떠돌아다니는 존재를 통해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난 그 정서가 썩 좋지 않다.

홍상수의 세 번째 분기점 정도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계속될 것인가.

난 죽음을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고 생생한 욕망으로 보여주고, 속물이 아닌 척 하기에 속물임을 증명하는 홍상수가 좋다.

그래도 계속 보겠지만, 과연 다음 분기점은 언제 나타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