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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이민자 (A Better Life , 2011)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불법이민 온 부자(父子)가 있다.
카를로스는 어렵게 트럭을 마련하고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하던 중 트럭을 도둑 맞는다.
카를로스는 아들인 루이스와 함께 트럭을 찾아나선다.

주연배우인 데미안 비시워가 이 영화를 통해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선정되었기에 보게 되었다.
배우들이 연기로 상을 받은 영화들 중 배우들의 연기 이외에는 볼 게 없는 영화가 많아서 잘 안 보는 편인데, 역시나 '이민자'도 데미안 비시워의 연기 외에는 실망스럽다.
영문 제목을 그대로 번역해서 한국에서 개봉했다면 훨씬 더 따분했을 것이다.

영화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한 대로 움직인다.
영화 앞부분에 불법이민 온 멕시코 사람들의 퍽퍽한 현실과 방황하는 루이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영화 앞부분도 필요 이상으로 길고 지루하다.

그나마 트럭을 도둑맞는 영화 중반부부터는 가시적인 사건이 생기니 몰입할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관객에게 몰입할 사건을 주고, 그 사건에 감정을 녹여내서 사건에 몰입한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그 감정에 이입하게 해야하는데, '이민자'는 스토리와 감정이 철저하게 따로 놀고 있다.
노골적인 대사들과 진부한 상황들 속에서 무슨 공감을 하겠는가.
뻔한 감정과 뻔한 상황을 이렇게 뻔하게 풀어놓으면 도대체 이 영화의 미덕은 무엇인가.

엔딩에서 카를로스와 루이스가 나누는 대사를 위해서 이 영화는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대사가 약하다.
대사 자체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고, 그 단순한 대사에 감동하기 위해서는 쉼없이 몰입하는 중에 애틋함을 느낄 만한 이야기가 필요한데 '이민자'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다.

무엇보다도 루이스의 감정변화가 공감이 안 되고 갑작스럽다.
갑작스럽게 이야기가 정리된다는 것은 앞부분 서사가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아닐까.
감정에 호소하기만 하고 도구적으로 쓰인 이야기 덕분에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감정에 호소하는 휴먼드라마를 안 좋아한다.
'이민자'는 너무 뻔하다.
데미안 비시워의 연기 이외에는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 단 하나도 없다.

크리스 웨이츠 감독은 도대체 이 시나리오에서 어떤 점을 발견하고 연출을 결심한 것일까.
'어바웃 어 보이'와 '개미'처럼 좋은 각본을 쓰던 사람이 왜 굳이 남의 시나리오를, 그것도 이렇게 연출로 개선할 수 있는 지점조차 없는 매력없는 시나리오를 선택했을까.
이 영화는 '어바웃 어 보이'에서 섬세한 연출을 보여주던 크리스 웨이츠가 수습하기에는 시나리오의 한계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