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Antique, 2008)



한동안 씨네큐브와 스폰지하우스의 라인업이 별로 내키지가 않아서 극장에 안갔다.
극장에 가기 위해서 광화문의 풍경을 보는 것이 내 주말의 일과였는데 광화문을 가지 않고 보낸 주말은 항상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아무튼 이번 주말에는 편집실 선배가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알바를 하시는 덕분에 극장에 여석이 많이 남으면 영화를 보여주신다고 하시기에 함께 상영하고 있던 주드로가 나오는 '추적' 대신 이 영화를 선택했다.
일단 '추적'은 어떤 영화인지 정보가 하나도 없었고, '앤티크'의 경우에는 꽤 흥미가 생기는 영화였기 때문에 '앤티크'를 보게 되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본 선배는 이미 이 영화를 한 번 본 상태였는데 '이거 좀 거북한 장면 나올텐데 괜찮겠어?'라고 내게 말했다.
꽤나 많은 퀴어영화를 예술영화라는 이름에 속아서 보았지만 여전히 퀴어영화는 내게 거북하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한국 정서에 맞춰서 동성애를 강조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영화를 보았다.

일단 이 영화는 게이영화라고 하기에는 좀 어색하다.
배우 중 김재욱만 동성애 장면이 많은 데 김재욱은 실제로 연기했을 때 힘들었을 것 같다.
내가 이 영화의 원작 만화를 보았을 때는 동성애 장면에 식겁해서 만화책을 덮어버렸던 것에 비하면 영화는 게이영화라고 하기에는 그나마 참고 볼 수 있을만큼의 표현수위를 보여준다.




일단 난 이 영화에 대해서 기대를 안한 상태로 보아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는 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그야말로 '웰메이드 영화'이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웰메이드'에 가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몇몇 이들은 엔딩이 아쉽다고 하지만 난 이 영화의 엔딩과 갈등이 해소되는 부분도 맘에 들었다.

민규동 감독의 전작들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전작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여고괴담2'와 이 작품 모두 민규동 감독이 연출했는데 신기하게 세 작품 모두 동성애 코드가 있다.




난 일단 원작만화를 안 본 상태로 이 영화를 보았다. (원작만화 1권을 조금 보다가 거북해서 덮었다)
이 영화는 장르를 단정하기가 어렵다.
영화 중간에 뮤지컬이 등장하는 부분도 특이했고, 주지훈의 어린 시절에 열쇠가 등장하는 판타지 부분도 돋보였고,
주지훈이 케잌을 배달할 때 보여주는 편집은 복고적이고 애니메이션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케잌을 만드는 장면은 빠른 편집으로 시각적 만족감을 준다.

영화 속 서사는 논란의 여지가 될만한 모호한 요소도 있다고 본다.
주지훈의 서사는 영화에 스릴러적 요소를 부여하지만, 미스터리가 풀리는 부분은 좀 어설픈 느낌이 있다.
처음에는 이 영화의 서사는 시각적 요소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각적 요소 이상으로 단단한 서사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이 영화가 기억될 수 있는 이유는 캐릭터에 있다.
일단 캐릭터들의 비쥬얼은 최근 나온 영화 중 단연 돋보인다.

나는 '궁'에서 주지훈의 느끼한 이미지를 싫어했지만, 이 영화 속에서 주지훈은 정말 멋진 비쥬얼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영화 속에서 주지훈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고, 연기도 가장 마음에 들었다.
원래 민규동 감독은 마성의 게이 역할로 주지훈을 점찍어두고 시나리오를 주었는데, 주지훈은 자기 자신과 시나리오 속 진혁이 자신과 닮아서 자신이 배역을 맡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재욱은 마성의 게이 역할인데, 삐쩍 마른 몸으로 여성스러운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다만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미지와 너무 흡사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드라마를 봤기 때문에 김재욱의 이미지가 드라마에서 그대로 복사된 느낌이어서 앞으로도 김재욱이 계속 똑같은 이미지로 소모될까봐 좀 걱정이 되었다.




최지호의 경우 얼마 전에 안타깝게 숨진 모델 이언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다.
최지호는 이언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모델로서의 이언과 최지호는 굉장히 카리스마있고 남성적이다.
하지만 그들이 맡는 역할은 주로 덩치만 크고 어리버리하고 바보 같은 역할이다.

유아인은 네 배우 중 가장 어리지만 배우로서의 경력은 가장 화려하다.
비주류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노동석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 출연하고
'이 영화 속에 내가 속해 있으면 좋겠다'라는 이유로 정윤철 감독의 '좋지아니한가'를 선택했다.
적어도 이 나이 때의 배우 중에서 가장 소신있는 배우가 유아인이라고 생각한다.




포스터만 보면 꽃미남 배우들이 나와서 유치한 이야기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의 후반부는 거의 스릴러다.
캐릭터들의 숨겨진 사연을 듣는 재미가 쏠쏠하고, 감독이 만화적 상상력과 빠른 편집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달시 파켓은 이 영화를 웰메이드 영화가 아니라 열심히 만든 영화라고 평했다.
내 생각에도 이 영화는 열심히 찍은 티가 팍팍나는, 그리고 노력한만큼 좋았던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