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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돈의맛 (The Taste Of Money, 2012)



임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극장에서 본 영화인데,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고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일까.
좋은 부분도 많았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일단 너무 설명적이다.
서서히 극단에 치닫게 되고, 오히려 극단에 닿는 순간 공감을 일으키는, 보편의 정서가 생기는 묘한 경험이 임상수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시작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고 계속해서 설명해주고 끝에서는 어설프게 착해진다.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다 보여주는 임상수는 뭔가 어색하다.
내가 기대한 그의 방식이 아니기에 이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보면서 궁금했던 두 가지.

하나는 달시파켓 맡은 역할의 한국어와 영어 혼용.
영화평론가 달시파켓을 정말 좋아하기에, 그가 연기를 한다는 것도 신기했고 처음에는 그인줄도 몰랐다.
한국영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영화평론가이기에 한국말도 잘하겠지만, 달시파켓이 연기한 캐릭터가 굳이 말할 때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써야했나.
영화 속 인물들 모두 왜 이리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쓸까.
상류층은 이런 방식으로 말하나.
그 어색한 대화 때문에 임상수의 좋은 대사들이 뚝뚝 끊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써야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또 하나는 훡.
처음에는 뭔 말인가 했다.
자막에도 훡이라고 나왔으니까.
fuck을 자막에서 훡이라고 표현하고, 아무튼 영화 속에서 섹스라는 단어는 한 번도 안 나오고 계속 훡이라고 한다.
상류층은 섹스를 훡이라고 하나.
그냥 훡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되게 부자연스럽다고 느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전작인 '하녀'가 더 좋았다.
'하녀'의 화법이 더 좋았다.
한 감독의 영화이고 메시지도 비슷해 보이지만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고 느껴졌다.

가족들 모두 모여서, 꼬마아이까지 함께 미성년자관람불가 영화 '하녀'를 보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굳이 영화 '하녀'를 원작과 임상수 자신의 영화 두 버전 모두 영화 속에 등장시키고, 나미가 대사를 통해서 '하녀' 속 나미와의 연관성을 말하는 대목이 필요했을까.
나미 캐릭터의 비중을 확 높이지 않는한, '하녀'의 잔상이 이 영화에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영화 보면서 거부감이 들었던 것들은 몇몇 팩트와의 연관성 때문이다.
영화 속 팩트는 진짜 사실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상납이나 대기업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들은 풍문으로 들어온 것들인데, 그것들을 설명하듯이 대사에 풀었어야 했을까.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설명적 대사들로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노출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임상수 영화치고는 노출이 적은 편이다.
이 영화는 전혀 극단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설명적이고 노골적인 부분은 대사와 몇몇 맥락들이다.

이 영화의 엔딩이 과연 희망적일까.
임상수 영화 중 가장 희망적인 엔딩을 가진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난 이 영화의 엔딩이 굉장히 어설픈 타협이라고 느껴졌다.
'하녀'의 마지막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앞부분에서 내내 느꼈던 이질감이 영화 마지막에서 어설프게 풀어지니 전혀 공감이 안 되었다.

김강우의 캐릭터가 좀 더 중재를 해주었어야 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몰입할 수 있는 감정의 끈을 김강우 캐릭터가 좀 더 붙잡고 있었어야 했다.
전혀 와닿지 않는 이질적인 세계를 펼쳐놓았을 때, 그 안을 관객과 함께 탐험하고 공감할 캐릭터가 없어서 영화가 내내 공감이 안 되어서 굉장히 먼 거리에서 영화를 본 느낌이다.

가장 좋았던 캐릭터는 백윤식의 캐릭터이다.
오히려 백윤식을 중심에 두고, 철저히 백윤식 중심으로 백윤식의 일대기를 쭉 풀어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김강우가 화가 나서 차를 멈춰세우고 온주완과 싸우려고 하는 장면이다.
밑에 있는 이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그 한 장면에 참 잘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백윤식이 후반부에 수영장과 욕조 안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완전 그리스비극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백윤식이라고 생각한다.
유일하게 피가 도는 캐릭터로 보이는 백윤식과 그 외에 인물들 덕분에 캐릭터들의 밸런스가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었다.
상류층 사람이라서 피도 안 도는 사람으로 느껴지는게 아니라, 공감이 안 되는 캐릭터라서 표면적인, 피가 돌지 않는 캐릭터라고 느껴졌다.


결국 임상수 감독은 더 좋은 영화로 돌아올 것이다.
이번 영화는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그는 어쨌거나 좋은 감독이고 걸작을 들고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감독이니까.

백윤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와 김효진이 일탈해서 찍는 로맨틱 코미디.
어쩌면 영화를 보는 동안 나 혼자 기획해서 다른 영화들을 찍는 상상을 하느라 영화가 덜 와닿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