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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화

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 , 2017)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파수꾼'의 다른 버전일까 싶었으나 소재가 아니라 톤 앤 매너로 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감수성에 방점을 찍었다기보다 좀 더 거시적으로 죄인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해 말한다. 캐스팅이 정말 좋은 작품이다. 전여빈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이 이 영화를 끝까지 이끌어나간다. 서영화 배우 옆에 있어도 존재감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가 아닌 작품에서 서영화 배우를 보는 건 오랜만이다. 전소니 배우는 짧은 등장에도 강렬하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죄인을 빨리 만들고 그 죄인을 단죄하면서 자신은 면죄부를 얻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런 시스템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자신이 휘두른 죄인에 대한 낙인이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른 채. 더보기
풀잎들 (GRASS , 2017) 오랜만에 영화를 볼 때 기준이 늘 러닝타임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현실이므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고르다가, '풀잎들'을 봤다. 이유영은 짧게 등장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민희의 딕션이 멋지게 바뀐 분기점이 된 작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매 작품마다 나오는 홍상수스러운 인물, 이번 작품에서는 정진영이다. 나중에는 아예 안재홍과 공민정처럼 비교적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홍상수가 좀 더 젊었을 때 젊은 연인을 다뤘던 것처럼. 여전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의 홍상수에게 썩 호의적이지 못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틸컷 같은 이미지는 과하다. 이유영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김명수의 그림자를 보여주거나 하는 장면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홍상수는 실체를 보여줄 때 흥.. 더보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 2015) 정재영이 홍상수 영화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걸 확인한 영화다.술 취해서 대화로 핑퐁하는 부분의 리듬이 너무 좋았다.다만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반응을 앞뒤에 배치했는데, 뒷부분의 초반은 설정상 필요했지만 루즈하게 느껴졌다.김민희의 연기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보다 이 작품이 더 낫다고 보고, 적은 분량임에도 고아성의 존재감이 컸다. 늘 그의 영화보고 궁금한건데, 진짜 술자리에서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보기
밤의 해변에서 혼자 (On the Beach at Night Alone , 2016) 홍상수 영화를 본 지 꽤 되었다.'해변의 여인'부터 시작해서 그 이후의 영화들을 봤고, 데뷔작을 보고 감탄했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내게 홍상수 3기 같은 느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태껏 본 홍상수 작품 중 가장 실망스러웠다.홍상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이 영화에서는 찾기 힘들다.일단 그의 방어적인 태도, 변명에 가까운 말들로 인해 생긴 작위성이 그 이유라고 생각된다. 특히 '시간'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노골적으로 쓴 부분은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과 너무 흡사했다.마치 시간 위를 부유하듯 사는 여인이 결국 다시 시간으로 복귀해서 느끼는 성장통.이렇게 간단하게 요약되는 홍상수의 영화가 처음이고, 그래서 별로였다.홍상수는 요약되지 않지만 우리 일상에서 접근가능하기에 매력적이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