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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블루 벨벳 (Blue Velvet, 1986)



다친 아버지를 보고 오는 길에, 우연히 잘린 사람의 귀를 발견하고,
그것에 호기심을 느껴서 그 귀에 얽힌 사연을 찾아나선다.

성적 에너지로 가득찬 영화이다.
성도착증 증상이 나온다는 면에서는 크로넨버그의 '크래쉬'가 떠올랐다.
'크래쉬'가 성적 에너지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반면, '블루벨벳'은 뚜렷한 서사를 보여주고, 성적 에너지는 그 안에 숨겨놓는 방식을 택한 덕분에 보기에 더 편했다.

극이 진행되다보면 잘린 귀에 대한 호기심 대신 성적 호기심이 서사를 진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잘린 귀와 얽혀있는 여자의 집 옷장에 숨어들었다가,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성적으로 희롱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
위험한 것을 알지만 그 여자를 계속 찾아가게 된다.
희롱하는 남자나 지켜보는 남자나 성적 욕망을 따라 움직인다.

절은 주인공 커플인 카일 맥라클란과 로라 던은 선남선녀이지만 그래도 보고 나면 이들보다도 데니스 호퍼와 이사벨라 로셀리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이사벨로 로셀리니가 나체로 주인공을 기다리는 장면에서는 네이팜탄의 폭격을 받은 마을에서 벌거벗고 울면서 뛰쳐나오는 베트남 소녀 사진을 참고 했다고 한다.
이사벨로 로셀리니는 데이빗 린치의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와 너무 잘 맞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영화에서 제일 압권은 데니스 호퍼이다.
정말 작정하고 미친 놈처럼 나온다.
영화의 성적 에너지가 넘치는 것도 사실 데니스 호퍼 덕이 크다.
역대급 변태 캐릭터랄까.
아무튼 그의 연기가 정말 환상적이다.

오프닝과 엔딩에 블루벨벳이 펼쳐진 화면이 참 멋졌는데, 무엇보다도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나체의 로셀리니가 주인공의 부축을 받고 주인공의 여자친구 집에 들어간 뒤의 장면이다.
로셀리니가 주인공의 여자친구 앞에서 주인공에게 기댄 채 나는 이 남자와 성교했어요, 라고 말하는데, 엄청 기괴하고 웃기다.
주인공이 내내 감추고 있던 성적 판타지가 들통나는 부분으로 느껴져서 내가 다 창피하고 민망해서 웃음이 났다.
아무튼 온갖 감정들이 다 담겨 있는 장면이다.

영화의 착상 자체가 블루벨벳이라는 노래를 듣고 된 것이기에 음악이 중요하게 쓰이는 영화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데이빗 린치와 작업하는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음악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둘은 함께 피아노에 앉아서 데이빗 린치가 무슨 말을 하면, 안젤로 바달라멘티는 그 말을 건반의 멜로디로 표현한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음악을 조율한다고 하는데, 이상적인 작업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안젤로 바달라멘티가 조금 힘들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작업하는 걸 보면 잘 맞는 듯 싶다.

보는 내내 기분이 이상한데 계속 그의 영화를 보게 된다.
기괴한데 어떻게 좋을 수가 있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 데이빗 린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