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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희

나의 절친 악당들 (Intimate enemies, 2015) 임상수 감독을 정말 좋아한다.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하녀'는 걸작임에 틀림없다. 아쉽게도 그의 최근작인 '돈의 맛'을 보고 실망했고, '나의 절친 악당들'은 더욱 더 실망했다. 두 영화 모두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태도가 많이 묻어있다. 하지만 내가 임상수 감독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굉장히 냉소적으로 풀어내는 현실이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희망보다 냉소를 말할 때 더 빛나는 감독, 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슬픈 말일까. 예고편과 초반부를 보면서 예상한 분위기는 데이빗린치의 '광란의 사랑'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는 지아장커의 '천주정'의 첫 번째 에피소드의 톤으로 갔다면 훨씬 좋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느꼈다. 임상수 감독이 진지하고 냉소적인 톤의 영화 속에서 살짝 던지는 위트는 좋지만, .. 더보기
건축학개론 좋았다. 아니, 이 영화를 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 중에 90년대를 지나오지 않은 이가, 첫사랑의 기억이 없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고 하기에, 영화의 캐스팅 소식만 듣고도 굉장히 기대를 했다. 아역과 성인연기자의 외적인 모습이 너무 달라서 안 어울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15년이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심지어 기억까지도 모조리 바뀔 수 있는 기간이라고 느꼈다. 누군가를 15년 동안 기억해 왔다면 짧은 수도 있겠지만, 그 15년 동안 추억은 계속해서 가공되고 포장된다. 지금 내 옆에 그 사람을 두지 못하고 추억으로 곱씹을 수 밖에 없는, 후회스러운 기억들을 포장해가며 하루하루 견뎌나가는 것이다. 아니, 대상에 대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