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내게 픽사 최고의 영화는 '토이스토리3'이고, 최고의 장면은 '업'의 전반부에 등장한다.
물론 '인사이드아웃'도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재밌게 보고 있는 웹툰인 '유미의 세포들'과도 비슷한 설정을 가진 영화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결국 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픽사는 항상 유년기와 아름답게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유년기를 그저 흘려보낼 뿐, 유년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건넨 적이 없었는지 도 모른다.
그런 우리들에게 빙봉의 마지막 인사는 기억 한 켠에 묻어둔 유년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눈 인사이기에 더욱 울컥하게 한다.
슬픔, 기쁨 등 사람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까.
사람의 감정에 대한 수많은 공간 중 가장 궁금했던 공간은 기억의 쓰레기통이었다.
'정말 삭제하겠습니까?'라는 물음도 없이 풍화되어간 기억들 중 내가 지우면 안 되었을 기억이 있으면 어쩌나 괜히 보는 내가 다 불안했다.
기억의 쓰레기통에서 며칠 살다 나오게 된다면 슬픔과 기쁨 중 어떤 감정과 더 친밀해져서 나오게 될까.
슬퍼하는 법도 연습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산다는 것은 슬픔을 숨기는 것에 능숙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극장에 울 준비를 하고 가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를 보는 순간이 아니면 울거나 슬픔을 털어놓을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별로 없는 극장에서 조조영화를 보면서 맘 놓고 울 수 있는 순간이, 내가 기억하는 눈물의 순간이다.
일상에서는 눈물을 참는 순간이 더 많다.
아니, 눈물을 참는다는 것을 인지할 틈도 없이, 눈물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픽사 덕분에 덜 외로워졌다.
나와 항상 함께하는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들이 하나의 캐릭터라고 인지하고 살 수 있다면 나는 분명히 덜 외로워질 것이다.
마치 토이스토리 시리즈를 보고난 뒤에 방의 불을 끄고 몰래 장난감들을 지켜보며, 장난감들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기다리는 순간처럼, 여러 감정 사이에서 힘들 때 내 머리 속에 있는 감정들이 살아움직인다고 느낀다면 우린 덜 외롭고, 더 행복해질 것이다.
픽사를 보고 나서 느끼는 든든함의 원천은 결국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에서 온다.
픽사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느끼는 유대감과 어른들이 느끼는 따뜻함, 그렇게 세상은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도 충분히 따스한 온기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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