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단, '밀양'은 좋은 짜임새에 비해 감흥이 덜했다.
'버닝'은 '밀양'만큼이나 내게 별 감흥을 못 준 작품이다.
심지어 짜임새에 있어서도 의문 가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 이 영화가 이창동 감독이 아닌 신인감독의 영화였어도 과연 '버닝'이 지금만큼 좋은 평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완벽에 가까운 그의 전작들의 여운을 머금고 봤기에 그나마 이 영화에 호의적인 게 아닌가 싶다.
가장 놀란 부분이 이 영화가 청춘에 대해 도식적으로 다룬 부분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서 도식적인 설정들을 본다는 게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가 청춘을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이런 도식적인 설정으로 극을 전개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예상가능한 지점들, 윌리엄포크너나 위대한개츠비 등 인용된 텍스트의 작위성, 캐릭터가 입으로 씹는 대사가 아니라 연출자의 대리자로서 뱉는 듯한 대사들.
캐스팅조차도 배우의 개성이 작위적인 캐릭터와 매치되었을 때 어색하지 않은 인물로만 캐스팅했나 싶기도 했다.
영화의 모호함은 매력이다.
그런데 연출자조차 답을 안 내린 채 모호함을 무책임하게 던지는 느낌이다.
정당화되고 매력적인 모호함이 아니라, 무책임하게 얼버무리는 당혹함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이 극의 당위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창동 감독이라면 멋진 이유가 존재할거야, 라는 가설 혹은 도식적인 해석 뿐이다.
평론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보고 의미부여도 가능하겠으나, 평론가의 평으로 영화가 완성되면 그건 연출자의 영화가 아니라 평론가의 글이 더 큰 공을 가져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매혹적인 장면들이 분명 존재한다.
자연광을 고집한 것도 한 몫 할 거다.
다만 아름다운 장면들조차 감독보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영향력이 더 크게 느껴진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시'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버닝'이 보여준 청춘은 전혀 공감할 수 없이 중년이 먼발치에서 그려낸 청춘에 대한 편견 같다.
부디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에서는 그가 가장 잘 이해하는 세게에 대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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