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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풀잎들 (GRASS , 2017) 오랜만에 영화를 볼 때 기준이 늘 러닝타임이라는 사실은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현실이므로 가장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들을 고르다가, '풀잎들'을 봤다. 이유영은 짧게 등장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김민희의 딕션이 멋지게 바뀐 분기점이 된 작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매 작품마다 나오는 홍상수스러운 인물, 이번 작품에서는 정진영이다. 나중에는 아예 안재홍과 공민정처럼 비교적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홍상수가 좀 더 젊었을 때 젊은 연인을 다뤘던 것처럼. 여전히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후의 홍상수에게 썩 호의적이지 못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틸컷 같은 이미지는 과하다. 이유영의 상대역으로 나오는 김명수의 그림자를 보여주거나 하는 장면도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홍상수는 실체를 보여줄 때 흥.. 더보기
그 후 (The Day After , 2017) 좀 놀라웠다. 전혀 기대를 안 했으니까.'밤의 해변에서 혼자'부터 홍상수가 연출자 이상으로 과잉된 모습을 보이는데 실망했고, '클레어의 카메라'에서 이방인 이자벨 위페르는 이전 배역들 때문에라도 내가 홍상수 영화에 실망한 이유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후'는 그 지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아마 김민희에 포커스를 맞추다가 사이드로 조금 빗겨나가면서 홍상수의 이전 스타일이 다시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자전적 요소 같은 건 떠나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정서를 다시 만났다.언제나 그의 데뷔작에 보여주는 정서를 선호했기에 반가웠다.다시 생생하게 움직이면서 죽음의 기운이 흐른다. 김새벽의 대표작이 '한여름의 판타지아'인 것도 몰입에 도움이 됐다.그녀의 이전 배역이 떠오른 덕분에 오히려 이 .. 더보기
클레어의 카메라 (La camera de Claire , Claire's Camera , 2016) 홍상수 영화에서 늘 죽음이 보인다고 느낀 건 인물들이 자신의 권위와 상관없이 미친듯이 기본적인 욕망만 쫓기 때문이다.마치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사람처럼.그런데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피사체에 대한 애정과 함께 연출자가 전면에 나오는 느낌이 들고, 죽음이 아예 노골적으로 캐릭터로 등장한다.'클레어의 카메라'도 비슷하다.피사체에 대한 애정은 그래도 다른 인물로 제법 분산되어서, 연출자의 편애에 가까운 애정의 시선은 좀 덜하다.그러나 후반부에 장미희 캐릭터의 지나간 언어가 아예 프레임 안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은 당혹스러웠다.홍상수의 노골적인 면은 캐릭터의 대화 속에 섞일 때 좋지,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건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와 거리가 멀다. 중간에 장미희와 정진영이 둘의 관계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 더보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Right Now, Wrong Then , 2015) 정재영이 홍상수 영화와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걸 확인한 영화다.술 취해서 대화로 핑퐁하는 부분의 리듬이 너무 좋았다.다만 같은 상황에 대한 다른 반응을 앞뒤에 배치했는데, 뒷부분의 초반은 설정상 필요했지만 루즈하게 느껴졌다.김민희의 연기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보다 이 작품이 더 낫다고 보고, 적은 분량임에도 고아성의 존재감이 컸다. 늘 그의 영화보고 궁금한건데, 진짜 술자리에서 이렇게 대화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