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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거인 (Set Me Free , 2014) '여교사'를 먼저 보고 몇 달이 지난 뒤에 '거인'을 봤다.'거인'을 먼저 봤다면 '여교사'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컸겠다 싶을 만큼, '거인'은 좋은 영화다. 한 소년이 있다.가정으로부터 도망나왔지만, 도망칠 수 밖에 없을 만큼 절망적인 가정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나아져서 돌아갈 보금자리일 것이라고 희망을 건다.나쁜 것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충고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그 희망조차 없다면 지금의 전진을 버텨나가기 힘드니까. 소년의 몸은 점점 커진다.작았던 소년에게 갔던 관심이나 보호는 점점 줄어든다.저 소년은 이제 몸이 큰 거인이 되었다.거인은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한 번도 보호받지 못했던 소년은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거인이 된다.우는 소년에서 우는 거인이 되었다. 소년은 나쁜 짓을 저지르.. 더보기
여교사 (MISBEHAVIOR , 2015) 결국 모든 영화는 계급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들이 충돌하면서 계급이 생긴다.그러므로 우리가 목격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욕망과 계급의 역사가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2016년 내게 최고의 영화는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였다.김태용 감독의 '여교사'는 영화 절반부까지만 해도 '비밀은 없다'에 버금가는 여성영화일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었다.두 여성이 어떤 연애를 이룰지, 어떤 기적을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문제는 신선하고 좋은 설정의 캐릭터들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치정극이 되면서 극이 무너진다.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계급과 욕망이 너무 손쉽게 막혀버린다.무척이나 아쉬운 영화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이 영화가 치정을 선택한 순간 모든 좋았던 순간들이 휘발하고 뻔한 극이 되.. 더보기
그녀의 연기 (You Are More Than Beautiful , 2012) 우연히 나타난 누구를 통해 나의 상처가 기적처럼 회복되는 것. 김태용 감독의 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는 테마이고, 항상 그 테마를 따뜻하게 다룬다.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는 방법을 너무 잘 아는 감독이다. 한여름에 봐도 그의 영화는 기분 좋은 따뜻함을 선물한다. '그녀의 연기'는 공효진과 박희순이 주연한, '뷰티풀'이라는 아시아 영화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의 단편 중 하나이다. 박희순과 공효진이 극 중에서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제주도남자인 철수가 애인대행 역할을 해주는 서울여자 영희와 함께 철수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드라마 작가인 김영현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는데, 이야기와 화면 모두 김태용 감독들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따뜻하다. 두 배우의 연기가 참 좋은 작품이다... 더보기
만추 (Late Autumn, 2010) 상암 시네마테크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좋았던 영화를 무료 상영도 해주고, 상영관 시설도 좋았고, 시네마테크 주변에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도 좋았다. 집과 스크린은 비교가 안 된다. 한 영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곳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설레는 경험이다. 집에서 '만추'를 보았다면 아마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피곤한 상태에서 본 영화였음에도 굉장히 좋았다. 사실 배우를 비롯해서 스텝 명단만 봐도 좋을 수 밖에 없는 영화이다. 워낙 여백이 많은 영화이기에 그 여백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에 따라서, 내 감정이 어떠느냐에 따라서 이 영화가 굉장히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론가 달시 파켓의 평처럼 이 영화는 너무 시니컬한 사람들은 안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