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제훈

아이 캔 스피크 (i Can Speak , 2017) 꼭 필요한 소재라는 것이 있다.그 소재를 다큐가 아니라 극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좋은 짜임새가 필요하다.'아이 캔 스피크'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잘 만든 영화다.소재에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고, 불필요하게 과잉시키지도 않는다.오히려 김현석 감독 특유의 위트가 묻어나서 더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나문희의 연기는 알고도 울게 된다.분명 그녀가 관객을 울릴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도, 담담한 그녀의 표정과 말투 앞에서 버틸 수 없다. 소재를 핑계로에 고통스러운 장면을 전시하듯 보여줬던 과잉된 연출의 영화는 이 영화 속 담담한 나문희의 표정을 보면서 배웠으면 좋겠다.적어도 이런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톤에 있어서는 절제가 반드시 과잉을 이긴다.도구적으로 상처를 사용하는 영화나, 소재가 가진 힘.. 더보기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 2016) 조성의 감독의 단편 '남매의 집'은 한국단편 중에 손에 꼽을 만큼 걸작이다.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은 나처럼 조성희 감독을 그의 단편으로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조성희 감독의 개성을 살렸다기보다 장르영화의 문법에 충실한 영화다. '씬시티' 연상시키는 화면, 느와르와 추리 장르의 다양한 요소들을 잘 섞어두었다. 대부분의 기획된 영화들은 이러한 도전을 했을 때 굉장히 뻔해지기 쉬운데, 조성희 감독은 무척이나 짜임새 좋은 장르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다. 데우스엑스마키나가 될뻔한 마지막도 영화 초반부터 주기적으로 깔아놓은 복선 덕분에 제법 설득력을 가진 마무리가 되었다. 캐릭터와 플롯에 많이 신경 썼다는 것이 영화 전반에 묻어난다.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은 엄청난.. 더보기
점쟁이들 (Ghost Sweepers , 2012) 신정원 감독의 작품만큼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클리셰라는 단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장면들도 많고 진부한 대사도 많다. 누가 봐도 명확한 단점들이 많은, 빈틈 많은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쟁이들'은 꽤나 귀엽다. 신정원 감독 특유의 컬트적인 분위기도 좋고. 산만한 분위기와 귀여운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니 그것이 꽤나 매력적이다. 어설프게 잘난척하는 영화들보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신정원 감독의 화법이 좋다. 템포 자체가 정말 종잡을 수 없고 쌩뚱맞은데 그것조차도 개성으로 느껴진다. 적당한 짜임새의 개성없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이름은 사라지겠지만, 단점은 많아도 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신정원이라는 이름은 오래오래 회자될 것이다. 곽도원과 김윤혜가 연.. 더보기
건축학개론 좋았다. 아니, 이 영화를 안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 중에 90년대를 지나오지 않은 이가, 첫사랑의 기억이 없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고 하기에, 영화의 캐스팅 소식만 듣고도 굉장히 기대를 했다. 아역과 성인연기자의 외적인 모습이 너무 달라서 안 어울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15년이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심지어 기억까지도 모조리 바뀔 수 있는 기간이라고 느꼈다. 누군가를 15년 동안 기억해 왔다면 짧은 수도 있겠지만, 그 15년 동안 추억은 계속해서 가공되고 포장된다. 지금 내 옆에 그 사람을 두지 못하고 추억으로 곱씹을 수 밖에 없는, 후회스러운 기억들을 포장해가며 하루하루 견뎌나가는 것이다. 아니, 대상에 대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