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사 (MISBEHAVIOR , 2015)

Movie 2017.04.19 09:24


결국 모든 영화는 계급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들이 충돌하면서 계급이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격하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욕망과 계급의 역사가 실시간으로 펼쳐진다.


2016년 내게 최고의 영화는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였다.

김태용 감독의 '여교사'는 영화 절반부까지만 해도 '비밀은 없다'에 버금가는 여성영화일 것이라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두 여성이 어떤 연애를 이룰지, 어떤 기적을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문제는 신선하고 좋은 설정의 캐릭터들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치정극이 되면서 극이 무너진다.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의 계급과 욕망이 너무 손쉽게 막혀버린다.

무척이나 아쉬운 영화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치정을 선택한 순간 모든 좋았던 순간들이 휘발하고 뻔한 극이 되어버렸다.


남성 위주의 극에서 소모적으로 쓰이는 여성캐릭터들이 많다.

이 영화 속 이원근의 역할도 도구적이고 소모적이다.

치정을 위한 도구, 이 영화를 단순화시키는 도구가 되었다.

김태용 감독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뻔한 선택이 이 영화를 너무 평범하게 만들었다. 


이원근과 유인영의 전사가 너무 많이 편집되어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두 여자 사이의 남자캐릭터는 두 여자의 욕망과 계급에 대한 의식을 촉발시키는 역할로 쓰였어야 했다.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 생략되고, 생략되어야 할 부분이 설명되었다고 느껴졌다.

영화 제목이 '교사'가 아니라 '여교사'인 이유가 이미 우리나라의 여성문제, 계약직교사 문제 등 무척이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음에도 이 영화는 '여'라는 단어에서 예상가능한 선택을 해버렸다.


칸트는 선한 의드롤 가진 이들이 한 행동을 선으로 판단했다.

극 중 유인영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도 오해를 부른다.

이는 계급적 감수성 때문이다.

그녀는 애초에 부르주아 계층으로 살았고, 프롤레타리아 계층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들 계층은 궁극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계급구조상 불가능하다.

마이클센델 같은 덕윤리학자들이 공동체주의를 주장한 이유도, 의도만으로 선을 판단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여교사가 똑같은 인풋에 대해 서로 다른 아웃풋을 보여주고, 그 이유가 되는 계급적 한계가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계급을 벗어난 욕망이 서로 뒤섞이는 그런 순간을 보고 싶었다.

계급과 욕망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뒤범벅되는 영화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여전히 김하늘 하면 '그녀를 믿지 마세요', '동갑내기 과외하기' 같은 로맨틱코미디가 떠오른다.

그런 그녀의 새로운 얼굴을 봤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아주 새로운 지점이 될 것이다.

유인영은 자신이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아주 잘 활용한 예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보통 어떤 역할에 갇혀있다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그러한 종류의 배역에서 아예 정점을 찍어보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영화 전반부를 보면서 무척이나 감탄했기에 김태용 감독의 다음작품이 기대된다.

부디 예상못한 지점과 균열로 가득한 작품이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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