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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순

마녀 (The Witch : Part 1. The Subversion , 2018) 단숨에 느껴지는 단점이 많은 영화다.대부분의 캐릭터들은 클리셰 그 자체라서, 캐릭터를 채우는 동작과 대사는 거의 인용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낯익다.전개에 있어서 작위적인 부분도 꽤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녀'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극의 후반부와 배우 김다미의 존재감 때문이다.본격적으로 마녀가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후반부는 한국형 히어로물 시리즈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물론 세계관이나 캐릭터의 디테일에 있어서 아직 극복해야할 부분이 많다고 본다. 프롤로그 치고는 굉장히 긴 편이라 빠른 전개를 원하게 되는데, 분명 감독도 이러한 단점을 알았을 텐데도 시리즈를 염두하고 밀고 나갔다는 게 용기 있다고 느껴졌다.물론 결과론적으로 어느 정도 흥행이 되었으니 가능한 이야기지만.캐릭터의 밀도에 있어서도 김다미가 .. 더보기
남한산성 (南漢山城 , The Fortress , 2017) 담백하고 건조해서 좋았다.특히 대사.말로 만들어내는 텐션이 이 정도인 작품은 오랜만이다.물론 이것이 김훈의 원작 덕분인지 황동혁 감독의 재능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역사를 충실하게 그리되, 감정적으로 너무 극대화시키지 않았다.김훈의 원작이 워낙 건조할 테니 영화의 톤은 예상됐고, 영리한 선택으로 느껴진다.삼전도의 굴욕도 머리에 피가 나거나 하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서로 인정하면서 대립하는 것이 참 이상적으로 보인다.최명길은 대의는 삶 이후의 것이고, 김상헌은 대의가 삶을 지탱한다고 믿는다.각자의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멋졌다. 김상헌이 내내 강직하게 자기 신념을 말하지만 유일하게 거짓을 말하는 장면은 어린 아이인 나루에게 민들레가 피면 돌아온다고 하는 장면이다.대의를 위한.. 더보기
그녀의 연기 (You Are More Than Beautiful , 2012) 우연히 나타난 누구를 통해 나의 상처가 기적처럼 회복되는 것. 김태용 감독의 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는 테마이고, 항상 그 테마를 따뜻하게 다룬다. 상처를 따뜻하게 감싸는 방법을 너무 잘 아는 감독이다. 한여름에 봐도 그의 영화는 기분 좋은 따뜻함을 선물한다. '그녀의 연기'는 공효진과 박희순이 주연한, '뷰티풀'이라는 아시아 영화감독들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의 단편 중 하나이다. 박희순과 공효진이 극 중에서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제주도남자인 철수가 애인대행 역할을 해주는 서울여자 영희와 함께 철수의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다는 것이 줄거리이다. 드라마 작가인 김영현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는데, 이야기와 화면 모두 김태용 감독들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따뜻하다. 두 배우의 연기가 참 좋은 작품이다... 더보기
나의 친구, 그의 아내 (My Friend & His Wife , 2008) 딱히 영화 속 은유들을 살피지 않아도 이 영화는 썩 괜찮은 통속극이다. 욕망에 대한, 어쩌면 뻔할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에너지 넘치게 다룬다. 특히 이발해주는 장면에서의 불안함은 영화의 어떤 자극적인 장면보다도 크다. 정소현의 단편소설인 '너를 닮은 사람'이 떠올랐다. 자기기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자본주의에서 하는 가장 많은 실수이자 은폐되기 쉬운 진실에 대해서 영화는 힘있게 말한다. 잘못된 침묵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세련된 방식으로 말하는 한국영화는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진실이 가려져야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 가려져 있는 동안 썩어버려서 진실이었던 적을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