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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

남한산성 (南漢山城 , The Fortress , 2017) 담백하고 건조해서 좋았다.특히 대사.말로 만들어내는 텐션이 이 정도인 작품은 오랜만이다.물론 이것이 김훈의 원작 덕분인지 황동혁 감독의 재능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역사를 충실하게 그리되, 감정적으로 너무 극대화시키지 않았다.김훈의 원작이 워낙 건조할 테니 영화의 톤은 예상됐고, 영리한 선택으로 느껴진다.삼전도의 굴욕도 머리에 피가 나거나 하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냈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서로 인정하면서 대립하는 것이 참 이상적으로 보인다.최명길은 대의는 삶 이후의 것이고, 김상헌은 대의가 삶을 지탱한다고 믿는다.각자의 신념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멋졌다. 김상헌이 내내 강직하게 자기 신념을 말하지만 유일하게 거짓을 말하는 장면은 어린 아이인 나루에게 민들레가 피면 돌아온다고 하는 장면이다.대의를 위한.. 더보기
덕혜옹주 (The Last Princess , 2016) 허진호 감독의 초기작을 좋아한다.'봄날은 간다'와 '8월의 크리스마스'는 합쳐서 10번도 넘게 보았다.학생 때는 이해가 안 되어서 당위성을 가지고 봤고, 지금은 문득문득 생각나서 보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허진호 감독이 타협하기 시작했다고 느껴졌고, 타협은 과잉을 부른다고 생각한다.그가 타협했다고 느껴지는 영화에서부터 그의 작품에 별 애정이 안 갔다. '덕혜옹주'도 내게는 썩 매혹적이지 못했다.영화 중반에 총상 당한 박해일을 손예진이 손을 비벼서 자기 채온으로 치유하려하는 그런 장면이 허진호 감독으로부터 보고 싶은 장면이다.표현은 최대한 절제하지만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묻어나는 허진호 감독의 감성이 다시 보고 싶다. 서사에 있어서도 역사의식과 로맨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느라 집중하기가 힘들다.보편의 .. 더보기
필름시대사랑 (Love and... , 2015) 장률 감독의 '경주'를 재밌게 봤다. 굉장히 위트있고 좋은 이미지들이 많은 영화였다. '필름시대사랑'은 지금 멀티플렉스에서 상영 중인 일반 상업영화와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장뤽고다르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서사 없이 각각의 장면들이 따로 전개되는 영화다. 단편적인 장면들은 매력이 있을지 몰라도, 연결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보니 이런 식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한없이 난감하게 느껴질 것이다. '필름시대사랑'은 장률 감독이 필름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영화다. 하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형식을 파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내게 '필름시대사랑'의 방식은 썩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장뤽고다르는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지만, 난 의무감을 가지고 그에게 찬사를 보낼 생.. 더보기
경주 (Gyeongju, 2013) '경주'는 죽음에 대해 은유적으로 말하는 영화이다. 무척이나 정적이고, 호불호가 많이 갈릴 영화이다. 경주에는 릉이 많아서 집 앞에 릉이 있는 경우까지 존재한다. 영화 속 경주에서 만난 여인들은 남들보다 죽음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이다. 주인공은 오토바이사고를 눈 앞에서 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추격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경주의 풍경은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임을. 장률 감독이 아니라 홍상수 감독의 영화인가 싶지만, 주인공의 태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분명 욕망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 욕망의 출처가 홍상수 영화와는 좀 다르다. 박해일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견딜 수 있는 이유이다. 그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이 정적인 영화에 리듬이나 위트가 아예 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