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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10 Minutes , 2013) 악몽 같은 영화다. 보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 '마터스'나 '미스트' 같은 공포 장르도 아닌데 리얼리즘에 가까운 직장생활 묘사 때문에 힘들었다. 이곳은 말은 많은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 이 대사가 많은 걸 함축한다. 말을 따라가게 되면 그 끝에 이르는 곳은 책임이 없는 현장이다. 분명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가야하는 조직인데 왜 서로 싸워야만 하는가. 부서별 기싸움 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생산적이다. 건강한 견제와 갈등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건 구성원들이 제일 먼저 느낀다. 이상적인 회사 같은 건 없다. 그저 자신이 견딜 수 있느냐다. 그런데 점점 견딜 수 없을 만큼 최소한의 보호선이 낮아지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은 근본적으로 하루 중 큰 시간을 .. 더보기
소셜포비아 (Socialphobia , 2014)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공감가능한 부분이 많은 드라마다. 온라인에서의 자신을 오프라인과 분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젠 온라인 속 자신은 또 다른 신체에 가깝다. 다른 자아라고 표현하기보다 내 몸이 온라인까지 확장되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오프라인에서 소셜한 활동에 관심 없어도 온라인에서의 소셜에는 목숨을 거는 이도 있으니까. 그것에 대해 가치판단할 수 없다. 어차피 자신의 몫이므로. 블로그를 운영한지 꽤 오래 되었는데, 예전에 성범죄 저지른 목사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을 때 악플이 달린 적이 있다. 악플을 보기만 해도 몸이 아팠다. 당시에는 내 멘탈이 너무 약한가라고 생각했는데, 악플을 단 그들이 문제이지 내게서 원인을 찾고 싶지 않다. 에고는 강한데 그걸 지탱할 .. 더보기
철원기행 (End of Winter , 2014) '누구나 아는 비밀' GV 때 김대환 감독이 여러 이야기를 했다. 다만 이미 연출작이 있는 감독인데 '기생충 시나리오 작가'라는 타이틀로 소개되는 게 아이러니했다. 아마 영화사 쪽에서 그렇게 말했을 거다, 홍보를 위해서. '철원기행'은 충분히 멋진 작품인데, 수식어로 쓰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철원에는 가본 적이 없다. '철원기행'의 실제 촬영은 눈 때문에 강원도 고성에서 했다는데, 어쨌거나 철원의 풍경이라고 생각하고 감상했다. 이상희가 연기한 며느리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었다. 며느리라고 하지만 사실상 이들 가족과 남이나 다름 없는데 왜 모든 갈등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걸까. 보는 내내 느끼는 근본적인 답답함은 이러한 상황 때문이었다. '철원기행'에서 제일 큰 사건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이혼하겠다는 .. 더보기
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 , 2017) 보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파수꾼'의 다른 버전일까 싶었으나 소재가 아니라 톤 앤 매너로 보면 분명 차이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감수성에 방점을 찍었다기보다 좀 더 거시적으로 죄인을 만드는 시스템에 대해 말한다. 캐스팅이 정말 좋은 작품이다. 전여빈이라는 배우의 무게감이 이 영화를 끝까지 이끌어나간다. 서영화 배우 옆에 있어도 존재감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가 아닌 작품에서 서영화 배우를 보는 건 오랜만이다. 전소니 배우는 짧은 등장에도 강렬하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죄인을 빨리 만들고 그 죄인을 단죄하면서 자신은 면죄부를 얻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런 시스템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자신이 휘두른 죄인에 대한 낙인이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른 채. 더보기
귀주 이야기 (秋菊打官司 , The Story Of Qiu Ju , 1992) 대한극장에서 장예모 특별전 마지막으로 본 영화. 오늘부로 드디어 네 편 모두 봤다. 특별전으로 재개봉한 영화를 이렇게 열심히 챙겨본 게 처음이다. 아마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극장에 못 가다가 극장의 즐거움을 오래 느꼈기 때문일까. 일주일만에 간 대한극장인데 코로나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온도 체크하고 사진 찍고 자동소독기 같은 걸 거쳐서 지나간다. 예매 때는 3관으로 적혀있었는데 상영관이 6관이어서 늦을 뻔 햇다. 다행히 어제 먼저 갔던 분이 자기가 이런 이슈가 있었다고 공유해줘서 다시 확인한 덕에 시간에 맞춰서 들어갔다. 여성이 주인공일 때 보통 통념에 있는 여성의 특성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귀주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영화 통틀어서 성별 상관없이 가장 우직하고 상식적인 사람이 귀주다. '.. 더보기
인생 (活着 , Lifetimes , 1994) 그야말로 '인생'이다. 네이버에 있는 예전 포스터에 '대한극장'이라고 써있는 게 재밌다. 재개봉한 곳이 대한극장이었으므로. 어르신들이 많이 오는 극장이라, 영화 시작 전부터 어르신들끼리 싸워서 시끄러웠으나 다행히 상영 시작하고는 조용했다. 어제 본 '붉은 수수밭'과 마찬가지로 가족에 대한 부분이 얽히면서 안 울 수 없었다. 마스크 쓰고 영화 보는데 마스크가 축축해지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지만, 극장이 아니면 어디서 울까 싶다. 갈우와 공리 두 배우의 얼굴에 거의 모든 시대가 다 보이는 게 신비로웠다. 중국 근현대사를 다 볼 수 있는 영화다. 한국 근현대사를 담은 '박하사탕'이 떠올랐는데, '인생'이 훨씬 밝은 톤이라 보기는 편했다. 위화의 원작소설은 훨씬 더 암울하다고 해서 원작소설은 보기가 싫어진다. .. 더보기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t Le Fou , Pierrot Goes Wild , 1965) 장 뤽 고다르 영화를 보기 전에만 해도 포스터 때문에 가장 흥미로웠으나, 가장 난해했다. '언어와의 작별'의 고전 버전이랄까. 그럼에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룩북에 가까울 만큼 아름다운 색감 덕분이다. 미술을 맡은 피에르 구프로이는 훗날 '테스'로 오스카에서 미술상을 받는다. 상징으로 가득하고, 모든 걸 해체시켜놓았다. 오후에 대한극장에서 '붉은 수수밭'을 보고 집에 와서 왓챠로 '미치광이 피에로'를 봐서 그런지 몰라도 그 작품의 결이 완전히 갈렸다. 다만 붉은 색감이 돋보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후대의 감독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는 데이빗 린치가 가장 많이 떠올랐다. 내러티브보다 장면장면의 인상으로 전개한다는 공통점 때문일까. 로드무비적인 성격은 '광란의 사랑'을 .. 더보기
붉은 수수밭 (紅高梁 , Red Sorghum , 1988) 포스터가 이미 너무 많은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터조차도 유심히 안 보고 장예모 영화를 닥치는 대로 예매해서 봤기에 내용은 전혀 모르고 봤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울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울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너무 빠르게 느껴져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놀랐다. 앞부분 30분 정도는 시트콤처럼 흘러간다. 뒷부분에 일본군이 등장하는 장면부터는 잔혹한 현실 때문에 보기가 힘들었다. 다소 거칠게 만들어진 구석이 있지만,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의 붉은 빛과 햇살 등의 이미지가 워낙 인상적이라 넋을 놓고 보게 된다. 게다가 이게 데뷔작이라니. 88년에 놀라운 데뷔작이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예매해둔 장예모의 두 작품을 더 보고, 최근에 재개봉한 다른 작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