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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나쁘다

 

 

 

1. 위악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

 

이 말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앞에서 더 이상 무슨 원망을 하겠는가.

 

위악보다 위선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위악이 나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2. 절대적

 

이런 종교입니다.

이런 정치관입니다.

이런 관계입니다.

이런 사람입니다.

 

마치 불가침영역인 것처럼 존중하는 영역이 있다.

영원한 화두이기도 한 영역들.

 

이런 사랑입니다.

 

반면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는 썩 존중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것들과 달리, 사랑에 대해서 말 할 때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단 자기신념을 말하기 바쁘다.

 

사랑도 그저 취향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일까.

 

 

 

3. 연말

 

4월이 되어서야 연말 이야기를 쓰다니.

당시 신문사 일을 하고 있었고, 취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광화문, 인사동, 종로를 차례로 가로질러 운형궁 쪽으로 왔다.

 

한 해를 가로질러가는 느낌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을 큰 걸음으로 건너버린 느낌.

평소에 안경을 안 쓰고 다니다가, 오랜만에 안경을 쓰고 걸었기 때문일까.

선명하게 시간들을 가로질러버렸다.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인지한다는 것이 불편해져버렸다.

퇴근하는 길에는 다시 안경을 벗었다.

 

 

 

4. 밥

 

이것 또한 연말의 이야기.

당시 식대가 6천원이었다.

투쟁하듯 고민했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종로, 인사동, 삼청동, 광화문.

나름대로 많이 가봤다고 생각했다.

6천원에 먹을 수 있는 밥집을 찾는 동안 전혀 몰랐던, 동네의 다른 면을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밥이 삶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버거울 때가 있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소리가 때로는 너무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소리를 잠재우기위해 밥을 먹어야 하다니.

그렇게 먹는 밥은 이타적인 밥이 된다.

 

극장에서 밥을 안 먹고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아마 씨네큐브를 다니던, 정적인 예술영화들을 주로 봤던 때였다.

꼬르륵 소리가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영화를 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5. 관계

 

미안, 난 원래 사람들이랑 연락을 잘 안 해.

그럼에도 나를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참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연락을 잘 안 하는 친구들이 있다.

언제나보면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더 챙기고 있는 이들.

그들은 고맙다고 말한다.

그 말에 감동하고 더 열심히 챙기고 인연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 문득문득 그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어떤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흔적이 보일 때가 있다.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하지 않는 노력을 타인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는 순간들.

그럴 때면 허무해지고 비참해진다.

 

당연하다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다.

관계에 있어서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기질의 문제이겠는가.

그게 어떻게 당연한 것이겠는가.

그런 이들은 외로워하고, 욕심내지 않는 것이 이타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결국 관계란 이기적으로 시작되겠지만.

 

 

 

6. 맹목

 

그냥 그 장소를 좋아해, 라고 말하며 서울아트시네마에 가는 친구가 있다.

그냥 그 향을 좋아해, 라고 말하며 카페에 가는 친구가 있다.

그냥 편해, 라고 말하며 누군가를 만나는 친구가 있다.

 

목적없이 그저 좋아서 하던 것들이 내게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주말마다 씨네큐브를 갔던 스무살이,

스페이스공감을 응모하면서 두근거렸던 순간이,

갑작스러운 연락에 만날 수 있었던 친구가.

 

이것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아니, 이런 순간들이 나를 견디게 해주고, 그런 순간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일상들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노동하는 순간의 대부분은 이유를 찾는 것에 그 방점을 찍게 된다.

이유가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식의 알고리즘이 자꾸 머리에 주입되고 있어서 힘들다.

 

이유없이 하고 싶은 것들을 다시 늘려나가야겠다.

결국 그것들이 나를 움직이고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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