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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질투 (La jalousie, Jealousy, 2013)

 

 

오랜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주로 미술전보다는 영상전을 보러 간다.

이번에 필립가렐 영화들을 상영해줘서 갔다.

 

회사에서 영어이름을 지어오라고 해서, '필립'이란 이름을 떠올렸다.

필립가렐의 영화를 본 적 없지만, 주변에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기도 했고.

결국 다른 이름을 선택하긴 했지만, 최근에 필립이란 이름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많았다.

 

미술관 가는 길에 백수린의 단편 '여름의 정오'를 읽었다.

전적으로 내 취향인 소설은 아니었지만, 몇몇 장면은 매혹적이었다.

 

오는 길에 봤던 소설 때문이었을까.

필립가렐의 '질투'를 통해 내가 보고 싶은 장면들을 정해놓고 간 것이었을까.

결론적으로 '질투'는 내게 썩 매혹적이지 않았다.

 

프랑스예술영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안 좋은 편견들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같았다.

장뤽고다르를 떠올리는 순간들이 많았다.

난 고다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고다르를 좋아하지 않는 당신은 편협하다, 라고 말한 영화과 교수가 떠오른다.

취향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역겨워진다.

 

어쨋거나 '질투'를 보면서 좋았던 순간들은 주인공의 딸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 외에는 딱히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흑백의 화면, 연인의 이야기.

서로 헤어지고 상처주고 다시 만나는 과정들.

어차피 사랑이야기는 뻔하다.

그런데 이 뻔한 이야기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함이,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필립가렐의 영화 두 편을 연달아보려고 미술관에 왔으나 '질투'를 보고나서 포기했다.

오히려 필립가렐의 영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필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리저리 굴리며 상상했던 순간이 더 좋았다.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필립가렐에 대해 듣는 순간이 더 즐겁다.

 

필립가렐의 영화보다, 필립가렐을 좋아하는 친구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아주 뻔하고, 가끔 특별한 이야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