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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이미테이션게임 (The Imitation Game, 2014)

 

 

 

손보미의 단편소설 '과학자의 사랑'이 언젠가 영화로 제작되기를 꿈꾸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이론을 만드는 과학자에게 이론적 결함이 생기는데, 그 결함이 바로 사랑일 때에 대한 소설이다.

영화화되면 어떤 분위기가 될지 자주 상상하는데, 그 분위기와 매우 흡사한 영화가 나왔으니 바로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앨런튜링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의 삶을 그냥 나열하기만 해도 영화신작 시놉시스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흥미롭다.

 

많이 알려진 인물이라 서사의 한계가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감독이 영화의 리듬을 잘 짜놓은 것도 있지만, 베네딕트컴버배치 덕분이다.

사실 드라마 '셜록' 시리즈보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속 게이요원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던터라, 영화에 몰입하는 것이 한결 더 수월했다.

 

앨런튜링이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은 그의 연구업적 때문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그의 태도 때문이다.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자기 혼자 외로움을 삼키고 괴물이 되기를 자처하는 그 모습은 순교자의 삶으로 느껴졌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을 괴물취급하며 합리화하고 외로움을 덜어보려 했던 나 자신과 대조적으로 보여서 순교자의 삶을 바라보는 변절자의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봤다.

 

쓸쓸한 앨런튜링을 볼때마다 더 마음이 아팠다.

내가 짊어졌어야할 외로움을 대신 짊어진 이의 뒷모습을 목격한 기분이다.

한 개인의 삶이지만, 그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짐을 짊어지고 가는 것인가.

난 앞으로 천재라는 말 대신 숭고함이라는 단어로 그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마치 사랑하듯 집착하고 연구한다.

결국 모든 프로젝트가 끝나고 혼자인 것이 싫다며 외롭다고 울부짖는 것은, 결국 그의 연구가 향한 곳은 평화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연구가 만든 업적들을 찬양하지만, 사실 그의 사랑을 바라볼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앨런튜링이 팀원으로 조안을 받으려 그녀에게 찾아가서 말한다.

과거에 자신의 손을 잡아준 이가 했던 말을.

자신의 인생에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주는 순간에 대해서 말이다.

 

인생과 영화에서 동일하게 감동하는 순간이 있다.

전혀 예상 못한 인물이 등장해서 내 말을 들어주고 나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고, 마법 같은 소통을 통해 치유되는 기적의 순간들.

그래서 그런 장면이 나오는 영화 앞에서는 꼼짝없이 울 수 밖에 없다.

삶에서도 항상 그런 순간이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며 비관적으로 말하면서도, 매일 집에서 나올 때면 그런 순간에 대한 환상을 가슴에 품게 된다.

 

고독을 친구 삼는다는 말이 슬픈 자기방어로 들린다.

고독을 친구로 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혼자 있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떠올리고 참아내는 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익숙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 고귀한 순간에 대해 구구절절 말하기 싫어서 고독이 친구라고 포장하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누군가의 고독을 찬양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떠올리며 살아가는 삶이라면, 그 삶이 수백 수천 가지라도 동등하게 존경하고 가슴에 품고 살 것이다.

 

컴퓨터의 시초가 되는 기계를 만들거나 세계대전을 줄이는 등의 천재적인 일을 해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다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겐 세계 최고의 공식이고 내가 수호하고 싶은 평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