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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아직은 겨울, 어쩌면 계속

 

 

 

 

1. 라면

 

기숙사 살던 시절에는 편의점 음식으로 하루 세 끼를 먹었다.

덕분에 지금도 컵라면을 안 먹는다.

삼각김밥은 너무 많이 먹어서 먹다가 토한 적도 있다.

컵라면을 포함한 편의점 음식 대부분을 먹지 않는다.

 

지금은 딱히 라면에 대한 혐오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라면을 안 먹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먹는다.

주로 힘든 일이 있으면 먹는다.

 

힘들면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이 먹고 싶다.

기분이 안 좋으면, 몸에도 안 좋은 음식을 쏟아줘야 정신과 육체가 공평해짐을 느낀다.

완벽하게 더러워진 나 자신을 바라보고 인정한다.

나 진짜 더러운 놈이구나.

 

그렇게 인정하고, 바닥을 치고, 고쳐나간다.

여전히 바닥이고, 고쳐나가고 있다.

 

새벽에 눈이 떠졌고, 문득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잠이 식욕을 이겼기에, 먹지 않고 다시 잤다.

꿈을 꿨다.

최악의 꿈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라면을 먹었다.

배가 필요 이상으로 불러있는 느낌을 정말 싫어하는데, 그런 느낌이 들 때까지 먹었다.

 

더 이상 라면 먹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라면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쁜 일이 생기는 것 같다.

 

 

 

 

2. 질문

 

학교와 군대를 비롯해서 수많은 집단에 소속되어있을 동안 타인들이 내게 그렇게 많은 질문을 했음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평생동안 몇 개의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소노시온의 '자살클럽'과 구로사와기요시의 '큐어', 두 편의 일본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두 영화 모두 결국 자기 자신이 스스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냐고 묻는 영화이다.

 

생각보다 자기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묻는게 쉽지 않음을 느낀다.

타인에게 했던 노력에 비해 나 자신에게 별 노력을 들이지 않고 살아왔다.

 

 

 

 

3. 부끄러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진짜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게 멋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틀렸다고 확신할 수 있다.

 

 

 

3. 하이쿠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

하지만...하지만.

 

 

스페이스난다 홈페이지에서 본 하이쿠이다.

고바야시 잇사, 라는 사람이 쓴 하이쿠라는데, 어린 자식들을 차례로 잃은 후에 쓴 것이라고 한다.

 

 

 

 

4. 당신의 말들

 

인터뷰를 좋아한다.

누군가의 인터뷰, 혹은 사적 발언들.

 

공강 때 가장 많이 가는 곳은 도서관 영화서적코너이다.

영화감독의 인터뷰집을 보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어떤 감독의 영화를 한 편도 안 봤는데, 그에 대한 책을 읽은 덕에 그의 영화제작과정이나 배경 등에 대해서는 아는 경우가 늘어났다.

 

인터뷰집을 읽는 것은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의 최고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독서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를 만든 이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마치 소개팅 전에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에 환상을 품는 단계와 비슷하다.

그 과정이 싫지 않다.

기대를 품을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최근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황정은이다.

그녀의 소설이 좋아서 그녀의 인터뷰기사도 챙겨보고, 창비 팟캐스트도 챙겨 듣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웃음소리가 인위적이라는 주변의 평이 신경 쓰인다고 했다.

 

그녀의 소설을 읽다보면, 억압된 삶을 사는 캐릭터들이 갑작스럽게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상상했던 인물들의 귀여운 웃음, 그 웃음소리는 황정은 작가의 웃음소리와 닮았다.

사려깊은 인물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귀여운 웃음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치명적인 일이다.

 

블로그에 떠도는 글을 보며 글을 쓴 사람을 상상하기도 하고, 라디오 패널로 나온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가 쓴 글을 상상하기도 하고, GV에 온 영화평론가의 얼굴을 보며 그의 글을 상상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 되어도 좋다.

어떤 단서를 통해 다른 단서를 떠올리고, 결국 그것이 사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내가 영원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순간, 팟캐스트를 듣는 순간, 그 순간의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 몸이 그들을 향해 쏠려있는 것을 느끼며, 그들을 좀 더 힘차게 떠올리는 것이 느껴진 덕분에 단 한 순간도 외롭지 않았다.

외롭다와 심심하다는 말은 내게 공감되지 않는 말이다.

혼자서 오래 걸어도 결국 누군가를 향해 갈 것임을 알기에 외롭지도, 심심하지도 않다.

 

그들이 뱉어둔 언어들이 고맙다.

그들이 뱉은 언어들이 아주 고약한 순간도 있지만, 그것들이 내 외로움을 부식시켜주는 순간, 그것은 아주 달콤한 고약함이 된다.

 

난 여전히 당신이 궁금하고, 앞으로 더 궁금해할 것이다.

 

 

 

 

5. 살

 

어디서 많이 봤던 짓이다.

그것을 내가 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흉내를 통해 타인을 기억하려는 것, 누군가를 습관으로 기억하려는 것.

그것은 내 살점을 파내고, 파낸 지점에 타인의 피를 심고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한 짓이다.

 

시간이 지난다.

상처 위에 다시 살이 돋아난다.

그 사람의 피가 뿌려졌으니, 그 사람이 내 안에 자라난 것처럼 좋아한다.

그렇게 의식하고 흉내내며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허무해진다.

뭐야, 이건 그냥 내 살이잖아.

무슨 짓을 해도 내 살이잖아.

 

그렇게 다시 도려낸다.

타인이 내 안에서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을 도려낸다는 생각으로, 마치 의식을 치루듯.

 

의식이 끝나면 서글퍼진다.

결국 타인을 생각하면서도 나 혼자였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나 혼자 바라보고, 나 혼자 울고불고 했던 순간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초연해진다.

초연해진다고 흉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내가 떠올리던 그 사람은 내가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괜히 원망스럽다.

나 혼자 한 짓임에도 원망할 대상을 찾는다.

사랑할 대상을 찾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원망이 필요한 순간에도 내 가슴에 가장 크게 품었던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 사람과 갔던 곳, 그 사람과 먹었던 음식, 그 사람을 만날 때 입었던 옷.

의식적으로 생각해본다.

함께 했던 순간들이 끝나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을 생각해본다.

 

추억?

추상적이고 어렵다.

 

몸을 본다.

살이 쪘다.

하긴 그렇게 열심히 먹으러 다녔으니.

우린 먹기밖에 더 했나.

 

넌 왜 하필 살이 되어 돋아난거야.

그야 우리가 만나서 먹기밖에 더 했나.

 

그래서 살이 쪘다.

살을 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겠구나.

누군가 내 살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편리한 것이구나.

 

살을 빼야겠다.

살이 빠지면, 사람과 사랑도 함께 쭉쭉쭉 잘도 빠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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