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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아버지의 이메일 (My Father's Emails , 2012)

 

아버지와 잘 지내다는 것, 그것은 내게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다.

개인적 노력의 순간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시스템 안에서 아버지와 자식이 친해지기는 무척이나 힘들지 않나 싶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메일을 통해 전개되는 다큐멘터리다.

아버지의 이메일은 통해 아버지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근현대사를 통찰해보게 된다.

한 개인을 관찰하는 것은 한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한 개인의 삶에는 그 시대가 촘촘하게 박혀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아버지의 순간들을 통해 한국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순간 또한 많다.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지점보다도, 홍재희 감독이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들이 멋지게 느껴졌다.

왜 살아계실 때 이야기 안 하고, 죽고나서야 그러냐고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살아있는 동안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 장벽의 두께와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고.

아버지와 자식,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 발버둥치다보니 어느새 생겨버린 그 장벽에 대해서 말이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동시에 안쓰러워한다는 것, 그러한 양가적 감정이 언제부터 이렇게 커진 것일까.

내가 만약 아버지의 이메일을 받는다면, 어떤 식으로 풀어낼까.

원망하던 아버지가, 어느새 안쓰러워져서 원망하는 나 자신이 나쁜놈이 되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아버지를 다시 한 번 원망한 적이 있다.

 

내게 영원히 '아버지'라는 이름은 당연한 동시에 불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내가 아버지가 되는 순간을 별로 꿈꿔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아름다운 판타지보다는 무척이나 난이도 높은 도전으로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이메일이 내게 도착하는 날, 나는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