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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빅쇼트 (The Big Short, 2015)

 

 

 

'캐롤'을 보고나서 바로 연달아서 봤다.

영화를 연달아서 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일단 기억이 섞일 위험이 크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보고나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을 때도, '마카담스토리'를 보고나서 '어린왕자'를 봤을 때도, '가족의 탄생'을 보고나서 '더 퀸'을 봤을 때도 그랬다.

훗날 생각해보면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두 영화가 섞여서 함께 떠오른다.

이래서 영화의 개봉시기라는 것도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캐롤'은 무척이나 좋은 영화지만, '빅쇼트'가 더 좋았다.

'캐롤'은 내게 완전히 딴 세상을 보여주는 정말 '영화' 같은 영화라면, '빅쇼트'는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울만큼 내 삶과 밀접하게 붙어있는 영화다.

 

마이클무어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편집이 이렇게 개성있게 된 영화도 참 오랜만에 본다.

영화의 리듬이 너무 좋아서 뜬금없어 보이는 장면들조차도 집중해서 보게 만든다.

 

중간중간 뜬금없이 유명인들이 금융용어 설명하는 것도 유쾌했다.

이렇게 진지한 소재를 위트있게 다뤄내니 안 좋아할 수가 없다.

 

하나의 사건을 여러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도 좋았다.

게다가 각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워낙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크리스천베일은 무엇인가 하나에 집착하는 역할이 참 잘 어울린다.

광기를 폭발시키는 역할보다 광기를 안에 담아둔 채 애써 담담하게 살아가는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데, '빅쇼트'에서의 캐릭터가 그렇다.

'위플래쉬' 보면서도 드럼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빅쇼트'에서 크리스천베일을 보면서 드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파이터'로 오스카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적 있는데, 그도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나 싶다.

최근 들어 가장 훌륭한 메쏘드연기를 보여주는 배우이기도 하고.

 

'빅쇼트'에서 가장 비중이 큰 캐릭터를 맡은 배우는 스티브카렐이다.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나 '미스리틀선샤인'을 통해 그를 봤을 때는, 그가 코미디연기에만 능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심각한 표정을 한 그를 보면 팀로스가 떠오르는데, 오히려 팀로스보다도 더 깊은 지점을 보여준다.

어느새 위트 있는 스티브카렐보다도 심각한 스티브카렐이 먼저 떠오른다.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좋은 배우다.

 

'캐롤'에도 나왔던 존 마가로를 비롯해 조연배우들의 연기들도 좋았다.

브래드피트는 거의 조연급인데, 자신이 속했던 세계에 회의를 느끼고 탈출한 캐릭터로 나온다.

최근 브래드피트는 제작자로서의 재능을 워낙 많이 보여주고 있어서, 그가 나온 영화를 보면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나부터 확인하게 된다.

 

라이언고슬링은 메인 나레이터이자 가장 위트있는 캐릭터로 나온다.

다소 얄밉기까지 한데, '드라이버' 같은 영화에서조차 그를 보면서 아무리 진지한 표정을 해도 그 안에서 위트가 묻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예 위트있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그를 보고 싶었는데, '빅쇼트' 속 그의 캐릭터가 그랬다.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영리하다.

이렇게 영리한 각본을 만나면 흥분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봤던 '레버넌트'가 자연 속 투쟁기라면, '빅쇼트'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덕분에 훨씬 더 생생하게 피부로 와닿았다.

명대사를 따로 뽑기가 힘들만큼 좋은 대사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경제불황에 배팅을 걸어서 승리해도 유쾌할 수만은 없다는 것, 권위를 가진 이들을 믿을 때 주로 친숙함에 의존해서 그들을 믿는다는 것 등, 씁쓸하게 곱씹게하는 대사들이 많았다.

 

모든 이들이 견고하게 믿는 부분에 대해 불신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생존을 위해서 불신이 미덕이 되는 사회라면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닐 것이다.

아담맥케이의 차기작만큼이나 금융이나 경제 서적을 보고싶은 욕망을 증가시키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