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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버진 스노우 (White Bird in a Blizzard, 2014)



 


오랜만에 시사회에 다녀왔다.
건대롯데시네마에서 '버진스노우'를 봤다.

영화에 대한 지구력이 떨어져서 여전히 걱정이다.
C열이어서 목을 살짝 들고 보느라 졸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주인공 두 명이 너무 예뻐서 잘 수가 없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포스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영화를 보며 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성숙해져가는 소녀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이야기가 좀 산만하다.
아주 전형적인 이야기들이 산만하게 흐르다보니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쉐일린 우들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으로 봤다.
전형적일 수 있는 이야기에 그나마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쉐일린 우들린의 매력 덕분이다.

아마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이 있다면, 그 이유의 팔할은 에바그린일 것이다.
에바그린은 히스테리 부리는 주부로 나온다.
물론 히스테리를 부려고 여전히 아름답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마지막이다.
마지막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는 것 자체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일지도 모르겠다.
줄거리와는 별로 상관없다.
왜냐하면 충격과는 별개로 정말 쓸데없고 뜬금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그 장면에서 다함께 탄성을 지르는데, 난 그 순간이 더 영화처럼 느껴졌다.
이 영화를 잊어도 관객들의 반응은 잊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1분 정도 되는 그 장면 덕분에 90분의 극이 무너진다.
전혀 맥락없고 예고없는 1분의 장면을 설득시키려면 90분을 무너뜨려야한다.
90분의 극이 차분하게 쌓아온 것 사이사이에 갑자기 균열이 생긴다.
그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장면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한다.
그랬다면 이 영화는 정말 환상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영화 초반에 20분 정도 보면서 난 이 영화가 올해의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다.
눈이 주는 이미지와 모녀의 관계, 게다가 환상적인 음악과 화면까지 완벽하게 보였다.
음악은 끝까지 좋았지만, 극은 실망스럽게 흘러갔다.

판타지 장면에 하얀 눈이 사용된다.
그런데 극의 중심사건과 연관된 사물이 눈의 이미지와 겹치는 순간, 이 영화의 '눈'은 무척이나 단순하고 천박하게 변한다.
충분히 잘 풀어나갈 수 있던 극의 비유들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좋은 요소들이 많았기에 더 아쉽다.
원작소설이 궁금해진다.
감독이 소설을 읽으면서 방점을 여러군데 찍어두고 정리를 못한 채 만든 영화 같다.

영화를 보고나서 쉐일린우들리와 에바그린의 아름다운 외모나,
눈의 환상적인 이미지, 몽환적인 음악들이 떠올라야 정상이다.
근데 형편없는 한 장면 덕분에 계속해서 그 장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빨간색에 대해 말하다가 마지막에 파란색을 꺼내둔 것 같다.
아니, 파란색은 같은 범주라기라도 하지, 그냥 강아지를 꺼낸다.
정말 아무 상관없는 것을 말이다.

영화 상영 전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쌀국수를 먹었다.
쌀국수는 옳았다.
'버진스노우'를 보았고, 영화는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장면 때문에 침몰한다.
그 장면은 틀렸다.

쌀국수는 옳았고, 그 장면은 틀렸다.
내가 먹었던 쌀국수에도 순서가 있고 맥락이라는 것이 있다.
이 영화는 쌀국수보다도 못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뒷맛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음식을 먹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