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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The Revenant , 2015)

 

 

수염이 빨리 자란다.

미친듯한 속도로 자라기에 매일 면도를 한다.

매일 조금씩 얼굴에 상처가 난다.

 

정말 면도를 하고 싶지 않다.

쉬는 날에는 면도를 안 하고 집에 있는 게 좋다.

만약 면도를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취소가 되면, 면도한 게 아까워서라도 나가야 한다.

내 피부에 상처를 내면서 면도까지 했는데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면도를 했고, 약속이 취소됐고, 가까운 극장들 상영시간표를 확인하고 대한극장에 갔다.

'레버넌트'를 보자고 결정하고 걱정이 됐다.

러닝타임이 거의 3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봤던 '헤이트풀8'는 자극적임에도 긴 러닝타임에도 힘들었고,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인 '버드맨'보다는 정적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러닝타임 내내 졸기는 커녕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거의 걸작에 가까웠다.

여전히 이냐리투 감독의 최고작은 '아모레스 페로스'라고 생각하지만, '레버넌트'는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누군가는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는 자기과시하기 바쁜 영화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재능 있는 감독이 자기과시를 해주는 덕분에 난 너무 행복하다.

타인을 매혹시킬 재능이 있다면 좀 더 과시하는 것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뻔한 서사를 가진 극이다.

엔딩도 허무하고, 다소 작위적인 부분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전체적인 메시지를 생각했을 때, 오히려 단순한 서사를 선택한 것이 유효하게 맞아떨어졌다.

 

작년에 영화 '도원경' 포스터를 보면서 상상했던 장면들을 '레버넌트'에서 목격했다.

'도원경'은 정말 말도 안 될 만큼 정적이어서 보는 내내 힘들었다.

포스터를 보면서 영화를 상상하는 순간이 참 행복하고, 그 상상을 실제로 보여주는 순간을 보기위해 영화를 본다.

'레버넌트'는 내가 상상했던 순간들을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자연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물인지에 대해 보여준다.

인디언과 백인의 역사까지 개입되면서 '레버넌트'의 단순한 서사는 큰 힘을 가진다.

인디언이 살려준 남자가 결국 자신들을 다 파괴시킬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이 영화에 아이러니를 만들어준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촬영을 언급 안 할 수 없다.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촬영을 보여주고, 그 덕분에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엠마누엘 루베즈키와 이냐리투 감독이 서로 자기개성을 보여주며 시너지를 내는 부분이 큰 영화다.

 

디카프리오의 최고작은 아니다.

다만, 디카프리오가 생존하는 과정을 목격하며 관객들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관객에게 극한을 느끼게 해준다.

 

톰하디는 '레버넌트'로 처음으로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 됐다.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그가 이번에서야 처음 노미네이트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디카프리오가 맡은 캐릭터보다도 톰하디가 맡은 캐릭터가 더 크다.

디카프리오와 톰하디 둘 다 '레버넌트'가 아니더라도 결국 오스카에서 상을 받지 않을까.

 

돔놀글리슨은 '어바웃타임'에 나올 떄만 하더라도 로맨틱코미디에서 소모적으로 쓰일 배우가 될 줄 알았다.

독특해보이는 외모가 오히려 한계점이 될 줄 알았는데 '스타워즈'에 이어서 '레버너트'까지 그의 필모그래피가 이렇게 흐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러 장르에 도전하면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그를 보면, 폴다노가 '미스리틀선샤인' 이후에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냐리투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바벨' 때도 느꼈지만, 그의 영화는 류이치사카모토의 음악과 참 잘 어울린다.

류이치사카모토의 멜로디에서,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나비효과를 느낄 수 있다.

 

이냐리투 감독이 최대한 많은 영화를 찍었으면 좋겠다.

'아모레스 페로스'처럼 사랑에 대해 말하는 영화로 다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최근작에서 삶의 투쟁에 대해 느꼈으니, 사랑에 대해 투쟁하는 영화를 찍는 그를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