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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한이야기

드라, 막




1. 드라마

삶이 공허할수록 드라마나 영화에 의지하게 된다.


2. 라인업

매년 이 시기에 제일 가슴 떨리는 순간은 부산국제영화제 라인업이 공개되는 것이다.
쟁쟁한 감독들의 신작 라인업.

항상 학기 중에 개막하기에, 부산국제영화제는 여태껏 한 번 밖에 못 가 보았다.
그때도 연극 끝나고 밤새 뒤풀이하고 버스에서 실신한 상태로 가는 길이었기에 애초에 힘겹게 영화예매하는 것은 포기하고 식도락 여행을 했다.

그 당시 함께 부산에 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런 조합으로 우리가 다시 여행을 갈 일이 없을 것이라는 걸.
엄청 친한 친구들이 아닌데 그렇게 충동적으로 여행간 것도 처음이었고, 몹시 재밌었다.
다음이 없을걸 알아서 그랬을까.

어쨌거나 부산국제영화제에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씨네21에 나와있는 영화제 라인업을 보며 개봉하면 봐야겠다고 점찍고, 줄거리만 봐도 재밌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두근거리는 것에 만족한다.
이런 두근거림의 출처는 뭘까.
막상 영화를 보면 이 두근거림은 사그라들텐데.

그런 걱정하기에는, 내겐 작은 두근거림도 소중하다.
두근거릴 일이 요즘 얼마나 있겠는가.
있어도 안 좋은 일로 두근두근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두근두근할 생각이다.


3.  본론

본론만 말할게,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목적지가 있는 말인데 괜히 빙빙 돌려서 말해야하는 순간이 있다.

빙빙 돌려말하는 동안 오가는 시시콜콜한 말들.
그 말들에 정이 간다.
한 때는 그것들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고, 본론만 툭하고 뱉을까 했다.
그런데 그런 시시콜콜함조차 없으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대화가 현격하게 줄어든다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시시콜콜함이 우리를 유지시켜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안부를 물어야지.
본론이야 때 되면 알아서 말하겠지.


4. 벨소리

처음 핸드폰을 구입한 것이 중학교 때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핸드폰이 몇 번 바뀌었지만, 단 한 번도 벨소리를 켜둔 적이 없다.
항상 진동 아니면 무음이다.

나 자신을 벨소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참 편하다.

내가 지키고 싶은 폐쇄성의 경계선이 분명 존재한다.
평소에 갇혀있다가 내가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오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난 내 벨소리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5. 일기

주말만 되면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덕분에 주말이 기다려졌다.
편지에 쓰기 위해서 내 일상을 견뎌왔다.
매일 자기 전에 일기를 썼다.
통화와 편지가 즐거웠고 기록하고 싶어서.

이젠 몰아서 일기를 쓰고 있다.
익숙해진줄 알았던 통화가 어색해졌고, 편지는 생일에나 써주는 것이 되었다.

참 별 것 아니라고 느껴졌는데, 이것들이 일상에서 빠지니 시간이 참 많아졌다.
편해졌다.


6. 손인사

시력이 안 좋다.
멀리서 누군가 올 때 아는 사람인줄 알고 인사했는데, 알고 보니 모르는 사람이었던 적이 많다.
나나 상대방이나 당황했던 적이 많다.

이젠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시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
단지 먼저 손을 흔드는 일이 줄어들었다.

좀 더 좋아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젠 더 이상 누군가를 당활시킬 일 따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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