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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경주 (Gyeongju, 2013)



'경주'는 죽음에 대해 은유적으로 말하는 영화이다.
무척이나 정적이고, 호불호가 많이 갈릴 영화이다.

경주에는 릉이 많아서 집 앞에 릉이 있는 경우까지 존재한다.
영화 속 경주에서 만난 여인들은 남들보다 죽음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이들이다.
주인공은 오토바이사고를 눈 앞에서 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추격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경주의 풍경은 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죽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임을.

장률 감독이 아니라 홍상수 감독의 영화인가 싶지만, 주인공의 태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분명 욕망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것은 비슷하지만, 그 욕망의 출처가 홍상수 영화와는 좀 다르다.

박해일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을 견딜 수 있는 이유이다.
그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이 정적인 영화에 리듬이나 위트가 아예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신민아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인 동시에 특별한 영화에 출연했다.
류승완은 잠깐 나오는데 어마어마하게 웃긴다.
류승완이라는 인물에 대한 편견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백현진은 유일하게 대사가 많은 인물이고, 오직 그만이 극중에서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부유하는 듯한 인물들 사이에서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실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방황해야 환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백현진과 박해일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등 여러 경계선을 이 영화에서 목격할 수 있다.
그 아슬아슬함이 이 영화를 보는 재미이다.
함축적인 대사들 위주라서, 단서들을 수집해나가다보면 결국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을 말하는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의 전사에 대해서도 감독은 별 관심 없어 보인다.
실제로 하루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무엇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저 느낄 뿐.

영화 막판에 풀숲을 헤쳐나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영화가 가진 신비로움이 극에 이르는 장면이다.
계속 경계선에 머물던 이 영화가 순식간에 천연덕스럽게 경계선을 넘어버리는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죽음을 옆에 두고도 참 천연덕스럽게 살고 있구나.
죽은 이들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면서, 죽은 자신들보다도 살아있는 이들의 행동을 더 비현실적으로 느낄 지도 모른다.
경주에 있는 수많은 릉 중 하나에 숨어서, 마치 잠시 죽어있는 상태로 이 영화를 바라볼 수 있다면 가장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