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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The Silenced , 2014)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찮은 영화이다.

사실 이러한 소재를 통해서 구현해낼 수 있는 플롯은 제한적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분위기와 감정이었기에 거기에 좀 더 집중했다면 훨씬 더 매혹적이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플롯에서 힘을 빼고 감정에 좀 더 집중해야한다고 생각했던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이러한 플롯으로 간다면 브라이언드팔마의 '캐리'가 떠오를 수 밖에 없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인 개성을 뽐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캐리'의 영향력이 나타나는 부분들보다 차라리 여고생들의 감정이 세밀하게 표현된 부분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CG티가 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는 영화의 톤 자체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갈 곳 없는 이들이 미약한 희망을 가지고 체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떠올랐다.

명백히 예상되는 불행 뒤에 행복했던 과거를 배치하는 것은 슬픔을 극대화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덕분에 이 영화의 마지막장면은 몹시 슬펐다.

 

여고생들의 성적 긴장감은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를 연상시켰다.

여고괴담의 주인공들이 개봉 당시에는 신예였지만 지금은 유명배우가 된 것처럼, 이 영화에 나오는 신인 여배우들의 연기 또한 굉장히 좋았기에 이들이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지 궁금하다.

 

시대극은 배경이 절반 이상이다.

미술을 통한 분위기 조성이 굉장히 좋은 영화이다.

엄지원 같은 경우는 헤어와 의상을 통해서 캐릭터의 반 이상은 설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보영도 인상적이지만,  박소담으로 기억하게 될 영화이다.

처음에는 김고은과 닮은 배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매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좋은 배우는 백색이거나 무채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투명에 가까운 백색을 연상시키는 배우이다.

공예지, 주보비, 박성연의 연기도 좋았는데 이렇게 반짝이는 배우들을 찾아내는 것도 감독의 역량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내게 이 영화는 사건보다 장면으로, 잘 계산된 플롯보다 설명 못할 감정을 머금은 씬들로 기억될 것이다.

소녀들 사이를 맴도는 감정들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된다.

 

이해영 감독이 걸작을 만드는 감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의 다음 작품은 지금 작품보다 좋을 것이고, 언젠가 걸작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장르 안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해영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히치콕의 세계 안에서 항상 탐구하고 고민하는 브라이언드팔마 감독이 떠오른다.

그의 차기작이 무슨 장르일지 모르지만, 분명 전작보다 더 좋은 영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