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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가장 따뜻한 색, 블루 (La vie d'Adele , Blue Is The Warmest Color , 2013)


어제 저녁부터 오늘 점심까지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서 봤다.
'어바웃 타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세 편의 영화 모두 시간에 대한 영화이다.
사실 시간에 대해 다루고 있지 않은 영화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사랑이 성장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함께 먹고, 시간을 나누고, 몸을 부비는 시간 말이다.

이 영화는 체험하게 한다.
영화 속 주인공 아델의 사랑을 체험한다.
러닝타임에 따라 관객들이 느끼는 사랑도 무르익는다.

서사도 굉장히 단순하다.
전적으로 인물에 집중하는 영화이다.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시종일관 탐미적이다.

격한 감정의 영화들을 생각해보면, 그 감정을 관객들에게 체험시키기 위해 굉장히 탄탄한 토양을 만들어둔다.
이 영화는 결벽에 가까운 연출과 그물망처럼 촘촘한 각본을 토양으로 삼고 진행된다.
머리로 차갑게 구상해낸 설계도만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감정들을 운반해낼 수 있다.
덕분에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아주 멋진 체험을 하게 한다.

영화의 노출 수위가 높아서, 이 영화를 보기 몇 분 전에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기에, 교육방송을 보다가 포르노를 보는 느낌까지 들었다.
어쩌면 그 덕분에 더 자극적으로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몰입의 정도에 따라서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영화이다.
혹사에 가까운 감독의 연출방식 덕분인지, 식사 장면과 섹스 장면이 반칙에 가까울 만큼 강렬하게 느껴져서, 인물들의 정서에 쉽게 휩쓸리게 된다.

레아 세이두를 워낙 좋아해서 보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전적으로 아델의 영화이다.
아델이 살짝 들린 윗입술과 통통한 볼로 음식을 먹고 몸을 섞는 동안 우리는 함께 성장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 영화의 격렬한 사랑은 관객으로서 단순히 목격하는 것보다 몰입이 더 쉽다.
목격보다 몰입이 더 쉬운 사랑이라니, 신비롭지 않은가.

아델을 보면서 배우 장진영이 떠오른 것은 나뿐일까.
살짝 들린 입술은 그녀로 하여금 사랑의 욕망이 가득찬 소녀로 보이게 한다.
아델이 우는 장면에서는 한 배우의 눈물이 한 씬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음을 느꼈다.

이 영화는 육체에 대한 영화이다.
이안 감독의 '색,계'와 마찬가지로 육체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육체는 힘이 쎄다.
처음 만나 웃으며 입을 맞추는 순간부터, 이별 직전에 울며 자신을 만져달라고 하는 순간까지, 이 영화는 몸의 힘을 통해 사랑을 말한다.

아델은 엠마의 색에 물든다.
아델은 엠마의 사랑을 배운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 푸른색일까.

사랑이 푸른색이었으면 좋겠다.
전시회장 속 아델의 푸른원피스처럼, 사랑하는 이들만이 푸른색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