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밤의 일본
민트페이퍼에 올라온 글 중에, 뮤지션이 추천한 2014년의 앨범에 대한 글이 있었다.
소란의 고영배가 '공기공단'이라는 팀의 '음가순여1'이라는 음반을 추천해서 들어봤다.
술 마시고 들으면 울게 되는 효과가 있는 앨범이라고 했다.
술 마실 일이 별로 없어서 울지는 않았으나, 밤에 들으면 더 좋은 음악임에 틀림 없다.
일본노래를 거의 안 듣는다.
일본어의 어감이 예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일본음악을 듣는 밤이라니, 어색하다.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사는 게 편한지라, 이렇게 불쑥불쑥 낯설고 어색한 것이 내 삶에 진입했을 때 느껴지는 그 기운이 좋다.
좋은 밤이다.
2. 정리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이것저것 정리를 했다.
원래 하나 정리하기 시작하면 다 뒤집어서 모든 것을 끝내야하는 스타일이다.
평소에는 버리지 않고 망설이던 것들도 갑자기 꽂히면 미련없이 툭하고 버린다.
이런 성향에 내 물건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우려나.
책 정리하면서 책도 많이 버렸는데, 도서정가제 전에 움베르코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사려다가 말았는데,
알고보니 집 구석에 있었다.
정리하면서 가장 기분이 묘했던 순간은 전화번호를 정리할 때였다.
여전히 꽤 많은 번호가 남아있다.
언젠가는 연락할 일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지우지 않은 번호들이 여전히 많다.
과연 언제까지 남게 될 번호들일까.
난 여전히 많은 희망과 의무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썩 좋지 않은 현상이다.
3. 일기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에서 전역할 때까지 항상 손으로 일기를 썼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손으로 쓸 엄두가 안 난다.
결국 컴퓨터로 쓰고 있다.
손맛은 덜해도, 과거의 행적을 찾는데 있어서는 편하다.
난 예전 일기를 보는데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악착 같이 기록하는 편인데, 나 자신이 사라졌을 때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라면서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내 일기를 볼 미래의 나를 의식하며 썼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정말 막 쓴다.
그래서 나중에 보고나서 현재 시점에 맞춰서 급 수정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일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예전 일기장을 펼쳐보는게 무섭다.
별로 반갑지 않을 것 같다.
4. 낭만
내가 생각하는 낭만은 굉장히 편협한 종류의 것이었음을 느낀다.
낭만이 없는 사람은 없다.
굉장히 많은 종류의 낭만이 존재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