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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1987 (1987:When the Day Comes , 2017)


평일에 퇴근하고 극장에 간 것은 오랜만이다.

회사 근처에 극장이 많다는 것은 복이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불이 켜지는 극장은 영화가 끝날 때쯤 후회하게 된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마찬가지로 '1987'도 엔딩크레딧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이기에 불이 켜지는 순간 감흥이 싸늘하게 식어서 자꾸 씁쓸한 뒷맛으로 남는다.


박종철에서 이한열까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다룬다.

'택시운전사'와 '1987'의 공통점이라면 장훈, 장준환 두 감독 모두 이전 작품들은 본인의 시나리오로 연출한 작품이지만, 근현대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건을 소재로 다른 사람의 각본을 토대로 연출을 했다.

'택시운전사'는 연출이 소재를 장악하지 못해서 소재에서 발생되는 과잉되는 정서를 방치해버린다. 

'1987'은 소재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강약조절을 잘해서, 큰 역사적 사건을 영화가 어떤 식으로 다뤄야할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일 때 무엇이 미덕일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재의 좋고나쁨으로 영화가 평가받는다면 기획자가 필요하지 연출자가 왜 필요하겠는가.

'1987'에도 물론 과잉된 부분이 있지만 러닝타임 내내 절제하고 속도감을 조절했기 때문에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재가 워낙 존재감이 크다 보니, 작위적인 서사나 도구적인 인물들을 걱정했으나 오히려 생생하게 살아움직이는 인물들이 사건을 자연스럽게운반해준다. 

영화를 보고 특정 배우의 얼굴 대신 수많은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이것은 영화가 좋은 선택을 했다는 증거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은 배우에게 필수라고 느꼈다.

사람은 양면을 모두 지닌 이에게 끌리게 되어있으니까.

유명배우들이 정말 많이 나오지만 오히려 낯선 배우들이 더 인상적이었다.

많은 이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보니 배우의 두드러진 인상보다는 가장 보편의 얼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많았고 다들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어쩔 수 없이 가장 눈에 튀는 배우는 강동원이다.

강동원이 이한열을 연기함에도 튀는 이유는 그의 얼굴이 너무 잘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극중에서 김태리와 강동원의 연대를 딱히 연애감정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시대에서 광장에 나온 모든 이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연대했고, 그것은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니까.


세상에 필요한 소재를 딱 이정도의 밀도로만 다룰 수 있어도 영화적으로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때그사람들'과 '박하사탕'에 견주어서 말할 수 있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밀도 높게 풀어낸 영화가 또 하나 생겼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영화를 통해서 이 시대를 목격할 때마다, 얼마 전 광장에 많은 이들이 모였던 그 순간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연대의 순간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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