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Hwayi: A Monster Boy, 2013)


'화이'는 '지구를 지켜라'의 프리퀄이라고 해도 될 만큼 구조, 인물, 메세지 등이 흡사하다.
완벽한 짜임새를 자랑하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완벽에 가까운 흡입력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장준환 감독이 보여주는 행복은 불안하다.
파멸의 기운을 한껏 머금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복은 툭하면 쓰러질 것처럼 위태롭다.
괴물들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은 결국 괴물이 될 운명이다.
그런 소년에게 사랑이나 정 같은 것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화이'의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석태가 화이에게 품는 애정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전사가 부족한게 사실이다.
석태의 전사가 짧게 등장하긴 하는데, 화이의 아버지들이 모이게 된 계기 등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우리가 목격한 수많은 괴물들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 하나겠지만.

장준환 감독의 연기연출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 막판에 작위적인 대사들 덕에 좀 과잉된다고 느껴지는 부분조차도 견디고 볼 수 있었던 것은 배우들 연기 덕분이었다.
여진구는 최소한의 순수함을 동아줄처럼 부여잡고 괴물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단연 돋보인다.
임지은은 '복수는 나의 것'과 비슷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슬픔을 참고 애써 웃을 때 짓는 그녀 특유의 표정은 하나의 씬을 거대한 애환으로 바꾸는 효과를 발휘한다.

김윤석은 절대악처럼 보이는데, 결국 그 절대악의 약점이 화이라는 아이러니를 품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화이'에서 보여주는 김윤석의 냉정함이 지독해지는 만큼 연민을 느끼게 된다.

석회공장 장면에서의 유연석은 '올드보이'의 유지태와 몹시 흡사하다.
괜히 유지태 아역으로 나온게 아니었구나, 라고 느껴졌다.
'수취인불명'과는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를 연기한 김영민과 악을 연기하기에 좋은 얼굴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박해준의 연기 또한 좋았다.

장준환이 만들어낸 비극은 그 끝이 얼마나 참혹하고 허무할지 알면서도 보게 되는 흡입력이 있다.
현대판 비극신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괴물이 되어야한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을 괴물, 그리고 그것을 모른척하는 우리.
메세지만으로도 이 영화는 가치가 있다.
누구나 다 알지만, 인정하지 않는 메세지.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비극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이기에, 우리는 창작자가 만들어낸 비극을 기대한다.
장준환이 만들어낼 비극이 여전히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