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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혜화,동 (Re-encounter, 2010)



유기견을 돌봐주는 소녀 혜화에게 몇 년 전 사라진 남자친구 한수가 찾아온다.
자신을 찾아온 한수를 계속해서 밀어내는 혜화.
그러던 중 혜화는 죽은 줄 알았던 자신과 한수 사이의 아이가 입양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2011년에는 유독 좋은 독립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
'혜화,동'은 사실 처음 포스터를 보자마자 혜화동에 사는 소녀의 성장이야기인가 싶었다.
알고보니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혜화였고, '동'은 중의적으로 쓰인다.
혜화의 마음은 겨울(冬)이고, 얼어붙은 혜화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이(童)이다.
조금씩 움직이는(動) 혜화의 마음이 과연 한수와 같은(同) 마음이 될지도 영화 내내 중요한 문제이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던 민용근 감독이 유기견을 구조하는 여자를 찍으면서, 여자가 탈장된 개를 구조하지 못하자 왜 개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지 모르겠다며 우는 것을 본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라고 한다.
유기견이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10대의 임신과 유기견이라는 두 소재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잘 엮어냈다.
두 소재를 엮는 것을 비롯해서 플래시백 사용까지 인위적이라는 느낌없이 영화 자체가 굉장히 매끄럽다.
특히 유치원에서 자신의 딸을 납치하려고 하는 장면에서는 서스펜스까지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템포가 굉장히 좋은데, 오히려 반전이라고 생각되는 영화 뒷부분이 흐름상 제일 어색하게 느껴진다.

섬세한 디테일들을 비롯해서 익숙할 수 있는 소재를 신선한 영화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의 정서를 건드릴 만한 부분이 많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부분은 직접적으로 감정을 말하는 부분들보다 상황을 통해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혜화가 우는 장면보다 괜찮다며 웃어넘기는 부분이 훨씬 더 슬프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울컥하는 장면이 많은 영화였다.
혜화가 임신 소식을 가지고 뵙게 된 남자친구의 어머니로부터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면 뒤에,
자기 집 강아지가 많은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을 다른 집으로 보내버리자고 말하는 부분은 유기견과 10대 임신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잘 엮어낸 부분 중에 하나이다.

영화 내내 혜화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유기견들을 다 자신의 집에서 기른다.
박탈당한 엄마의 자리를 버려진 강아지들을 데려와서 채우려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가장 슬펐던 장면은 정헌이 사별한 부인의 부모가 자신이 재혼할 여자가 있으면 꼭 자기들에게 먼저 데려오라고 했다며 결혼소식을 혜화에게 알리자, 혜화가 혁권에게 왜 나는 안되냐고 말한 뒤에, 장난이라며 이내 웃어버리는 대목에서의 혜화는 세상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정서를 보여준다.

큰 사건을 굳이 던져주지 않아도, 이미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혜화의 삶은 충분히 힘든 상태이다.
덕분에 담담하게 보여주는 혜화의 삶은 그녀의 사연을 알면 알수록 더 슬프게 다가온다.

혜화를 연기한 유다인은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얼굴을 가진 배우이다.
레쓰비 CF에서 '선배 나 열나는 것 같아'라고 말하던 애교 넘치는 그 유다인이 맞나 싶었다.
그녀의 실질적인 데뷔작이 이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로맨틱코미디도 충분히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로맨틱코미디가 아닌 '혜화,동'으로 이름을 알린 것이 앞으로 그녀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다는 증명서가 될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혜화는 버려진 집에서 강아지 새끼들을 발견한다.
아마 또 다시 사람들은 이 강아지 새끼들을 데려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혜화는 또 이 강아지들을 데려다 키울 것이다.
필름통에 모아둔 혜화의 손톱이나 집에 넘쳐나는 강아지나 자기 감정을 잘 숨기는 혜화에게는 차곡차곡 쌓아둔 고통으로 보인다.

후진을 선택하는 혜화의 마지막이 결코 해피엔딩으로 보이지 않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가 흘러 나온다.
앵콜요청금지라는 노래제목이 무색할만큼, 혜화는 또 다시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려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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