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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터널 (Tunnel , 2016)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로 인해 몇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볼 수 있었다.

하정우는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서 어떤 1인극을 보여줄 것인가,

감독 김성훈은 '끝까지 간다'에 이어서 어떤 장르극을 보여줄 것인가,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베리드'와는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것인가.

 

위와 같이 세 가지 포인트를 가지고 봤고, 전적으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정우의 연기는 여전히 좋은 리듬을 가지고 있고, 김성훈은 최동훈만큼이나 영리한 상업영화감독임을 증명한다.

'베리드'와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역시 한국적 정서일텐데, 911테러와 세월호라는 두 재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이 어떤 정서를 품고 있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좋은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유대감, 바로 공동체 의식이다.

'터널'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동체 의식을 희망으로 품고 간다.

시민사회가 회복하기 위해서 가장 최소한이자 최선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이고 현 사회는 그런 면에서 공동체 의식이 굉장히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개인은 마치 투기장에 갇힌 것처럼 서로 경쟁하고 투쟁하기 바쁘다.

마치 터널 속에서 살아남는 것처럼, 현재의 시스템에서 개인이 생존한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미션이 되어버렸다.

 

터널 안에 생존자 두 명이 중산층과 사회초년생이었다는 것도 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초년생이 전화를 해서 생존을 신고하는 동시에 말하는 것은 신입생연수의 참석여부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회사라는 소속이 생겼다는 것은 생존의 실마리를 잡았음을 뜻한다.

취업에 실패한 이들은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으로 취급 당하는, 사회적 죽음을 당하게 된다.

 

터널 안이 아니더라도 터널 밖에서 이미 수많은 이들이 사회적 죽음을 당하고 있다.

다만 뉴스에서는 그러한 개인들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개인의 희생에 대해 당연하게 느껴는 이들은 알아야 한다.

그렇게 개인을 방치하는 시스템 속에 속한 이상, 자기 자신도 언제든 방치될 수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에 더 많은 걱정을 하게 된다.

영화는 끝났지만, 우리의 생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