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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인데 어떻게 기대를 안하겠는가.
김지운 감독은 평범한 이야기를 멋진 비쥬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스타일리스트이다.

'악마를 보았다' 개봉일에 바로 영화를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 김지운 감독 영화 중에서 제일 별로다.
아니, 이 영화가 김지운 감독의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악마를 보았다'를 보고나면 불쾌함이 크게 남는다.
난 두 번 보라면 기분 더러워서 못 볼 것 같다.

난 영화 '쏘우'시리즈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쏘우'시리즈는 잔인함을 목적으로 하고, 이야기가 수단이 되는 영화이니까.
난 모든 영화의 기본은 이야기이고, 잔인함은 이야기가 흐르는데 도움이 되는 정도로 사용되어야한다고 본다.
근데 김지운의 신작인 '악마를 보았다'는 마치 '쏘우'시리즈를 연상시킨다.

영화 속에 관객들이 불쾌할만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게다가 그 장면들은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불쾌함만 증폭된다.
이것은 관객 입장에서 끔찍한 경험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국정원 요원인 이병헌은 자신의 약혼녀가 잔인하게 살해당한 뒤에 복수를 다짐한다.
이병헌이 자신의 약혼녀를 죽인 범인이 최민식임을 알게 되고, 최민식에게 잔인하게 복수하기 위해 그에게 고통을 준 뒤에 다시 풀어주는 일을 반복한다.

최민식이 이병헌의 약혼녀를 죽였다는 것은 예고편만 봐도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도 그 사실은 초반에 등장한다.
영화 초반부터 최민식이 이병헌의 약혼녀를 죽이고, 이병헌이 약혼녀의 죽음에 분노하고, 장례식에서 복수를 다짐하는 부분까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영화 초반에 이병헌이 장례식까지 진행되는 부분은 굉장히 속도감있고 관객으로 하여금 기대하게 만든다.
이 부분가지 너무 몰입이 잘 되어서 초반부터 이렇게 몰아치면 도대체 이 페이스를 어떻게 유지할 생각이지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근데 이병헌이 최민식에게 복수하기 위한 정당성이 확보된 이후부터는 이야기가 정지된다.
이병헌은 최민식에게, 최민식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잔인한 짓을 한다.
특히나 최민식이 시체를 토막내거나 여자를 강간하려고 하는 장면은 심하다 싶을만큼 불쾌하다.
최민식이 시체를 토막내거나 여자를 강간하는 장면을 암시만 주고서 빠른 편집으로 보여줄 수도 있는데 왜 관객들이 불쾌해할 장면을 그렇게 보여주는 것인가.

제한상영가 논란이 있었는데, 1분 30초 삭제되었어도 여전히 잔인하다.
그리고 그 삭제된 장면이 복원된 상태로 개봉되어도 이 영화는 그냥 잔인함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일 뿐이다.
모방범죄 논란도 있는데, 이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보면서 역겹다고 생각하면서 경각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방하고 싶다고 하는 놈들은 EBS 교육방송 보면서도 범죄 생각할 놈들이다.

영화 '색,계'의 배드씬은 '악마를 보았다'의 강간장면보다 수위가 훨씬 높다.
하지만 전자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그 배드씬이 필요하기에 영화는 편하게 흘러가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 강간하려는 장면이 노출은 적음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장면이 영화 중간에 나옴으로서 영화의 흐름이 깨져버린다.
게다가 그 장면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야기를 정체시킨 채 불편함만 남긴다.
그렇다보니 영화를 보다보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까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이 잔인한 장면이 언제멈출까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악마를 보았다'를 보며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서 자극적인 장면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자극적 장면들을 이어놓기 위해서 복수라는 테마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 영화의 폭력성이 절대적으로 잘못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결여되어있는 잔인함만 남아있는 영화를 보는 것이 스너프필름을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난 고어물도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보는 편이고, 김지운 감독의 팬이지만,
이 영화에서 폭력만을 묘사한 채 그 폭력이 왜 등장하는 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김지운 감독의 카메라를 보면서
과연 이것이 김지운 감독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이모개 촬영감독이나 조화성 미술감독의 참여 등 전작과 동일한 스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김지운 감독의 전작과 이질감이 큰 이유는 시나리오 탓이 클 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영화의 시나리오가 별로라는 느낌이 컸다.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 시나리오도 일주일에 썼다고 했을만큼 시나리오를 빨리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악마를 보았다'는 개봉예정인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의 시나리오를 쓰고 현재 데뷔작 '혈투'를 촬영 중인 박훈정 작가의 작품이다.
김지운 감독은 시나리오가 평범해도 자신 특유의 비쥬얼로 영화를 멋지게 풀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인데,
난 차라리 김지운 감독이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영화를 찍었다면 이 영화보다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나리오에서 불만이었던 것 중에 하나가 맨 처음 이병헌의 약혼녀부터 시작해서 이 영화에 등장한 모든 여자캐릭터들은 대사가 작위적이다.
게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여자캐릭터들의 대사가 작위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모든 여배우들이 하나같이 연기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다른 작가의 각본으로 연출한 이 작품은 김지운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최근작인 동시에 가장 별로이고, 가장 이질감이 크다.
영화 속에서 재미있는 대사들과 상황이 많았는데 오히려 그 부분이 좋아서 차라리 블랙코미디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는 이 영화가 불편함에도 볼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병헌의 멋진 목소리는 작위적인 대사조차도 탁월한 대사로 바꿔버리고, '친절한 금자씨'에 이어서 악역으로 등장한 최민식은 '올드보이'와 정반대의 캐릭터를 탁월하게 소화해냈다.
이병헌과 최민식이 대립하는 장면은 두 사람이 한 프레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될 정도이다.

영화에서 미술을 맡은 감독이 '친절한 금자씨'의 미술을 맡았던 조화성 감독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후반부에 최민식이 동료살인마(?)인 최무성을 찾아가는데 최무성의 집에서 영화 '박쥐'의 느낌이 많이 났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엔딩과 묘하게 비교되는 등 영화 속에서 박찬욱 감독의 기운을 여러모로 많이 느꼈다.




김지운 감독의 전작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보았을 때도 그렇고,
난 애초에 이 영화의 스토리를 기대하지 않고 갔다.
난 다만 김지운 감독이 또 다시 어떤 비쥬얼로 영화를 만들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김지운 감독 특유의 비쥬얼스타일이 없었다.
김지운 감독만의 스타일이 전무한 이 영화를 보며 이 영화를 다른 감독이 작업했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괴물 같은 놈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남자의 이야기.
이 영화는 괴물 같은 놈이 하는 짓과, 괴물이 되어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굉장히 자극적이고 과잉된 잔인함과 선정성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괴물이 되어가는 남자가 자연스럽게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나타나지 않고 잔인함만 남았고,
괴물인 남자의 토막살인과 강간장면은 악마 같은 남자를 묘사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불쾌했다.

아침에 밥도 안먹고 후다닥 일어나서 조조로 이 영화를 보고서 지금도 속이 아프다.
김지운 감독의 스타일이나 흥미진진한 복수극을 기대하는 관객들은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좀 아니다.
난 차라리 김지운 감독의 전작들을 다시 보겠다.

'악마를 보았다'는 재미도 없고 잔인하기만 해서 문제이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를 '아... 저 사람들 어떻게 될까'하고 영화의 이야기 전개를 기다리며 보던 관객들은
이야기는 없고 잔인함만 나열되어서 불쾌한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 영화 언제 끝나냐' 라고 하며 보게 될 것이다.

이 잔인하고 선정적이서 불쾌한 퍼즐조각들을 맞추기 위해서 왜 굳이 '복수'라는 판을 가져왔을까.
복수라는 테마 덕분에 이 영화의 불쾌함이 더 심화되었다.

이야기는 정지된 채, 복수라는 테마 속에서 선정적 장면만 반복되는 이 영화는
복수라는 테마의 정당성도 사라진 채 불편함만 증폭시킬 뿐이다.

P.S 전체적으로 안좋게 본 영화이지만 모그의 음악과 택시 강도들과의 대결 장면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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