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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아가씨 (The Handmaiden , 2015)

 



박찬욱 감독은 특별하다.

항상 입버릇처럼 철저하게 상업적인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어렵다고 하고 불편하다고 한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관객보다 비평가들을 위한 영화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올드보이'는 열 번도 넘게 봤고, '복수는 나의 것', '공동경비구역JSA', 단편 '심판' 등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워낙 좋아하기에, 스포일러를 당하기 전에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다.

최근에는 계속해서 청량리 롯데시네마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평소에 자주 가는 동대문 메가박스, 대한극장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다.

 

'아가씨'는 미술, 촬영, 의상 등에 있어서는 박찬욱 감독의 색이 진하게 묻어있지만, 영화 톤 자체는 그의 영화 중에 가장 밝다.

박찬욱 감독이 이런 식으로 희망을, 사랑을 말한다는 것이 낯설다.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인데, '아가씨'도 못지 않게 낯설다.

 

보고나서 블랙고어로맨틱코미디라고 불러야할 것 같은 '박쥐'만큼이나 하나의 장르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일단 박찬욱 감독에 대한 편견과 예고편과 스틸컷의 분위기로 인해 스릴러라고 예상하고 있고 일정 부분 이상은 맞는 이야기이다.

박찬욱 감독은 워낙 서스펜스에 능하기에 그 무엇을 찍어도 스릴러가 될 것이다.

 

두 여성의 성장과 연대를 말하기에 가장 크게 떠오르는 영화는 '델마와 루이스'였고, 어떤 목적으로 인해 가까워졌다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키기에 '색,계'가 떠오르기도 하고, 두 여자의 감정을 보고 있으면 '가장 따뜻한 색, 블루'가 떠오른다.

물론 수많은 영화가 떠오르지만 박찬욱 감독의 이전작품들이 가장 크게 떠오른다.

 

조상경 의상감독, 류성희 미술감독, 정정훈 촬영감독 등 박찬욱 감독과 주로 호흡해온 이들이 만든 영상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름답다.

아름답다 앞에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을 만큼, 탐미적인 것이 무엇인지 작은 장면 하나하나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올드보이'의 강혜정,  '박쥐'의 김옥빈에 이어서 '아가씨'의 김태리까지 보면서 느낀 점이라면 박찬욱 감독이 정말 배우를 선택함에 있어서 탁월하고 연기디렉팅 또한 엄청나다는 것이다.

김태리는 김민희가 함께 나오는 부분이 많은데, 두 사람의 외모와 분위기 등이 완전 상반된 것에서 오는 시너지가 크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든 장면의 분위기와 대사들은 사랑스럽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하기 힘들만큼 아름다웠다.

사랑에 대해 떠올릴 때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을 자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영화 보기 전에 인터뷰를 보면서 박찬욱 감독이 하정우의 연기 중에 '멋진 하루'를 인상적으로 봤다고 했는데, '멋진 하루' 속 하정우만큼이나 웃음을 많이 주는 역할이다.

하정우를 떠올리면 다양한 배역들이 떠오르지만 '멋진 하루'나 '러브픽션'에 이어서 '아가씨'까지 찌질하면서 위트 있는 역할이 떠오를 것 같다.

조진웅은 분장했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관객으로 하여금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고, 김해숙은 짧지만 인상적이다.

 

곡성에 이어서 '아가씨'에서도 아역배우가 눈에 띈다.

김민희의 어린시절을 연기한 아역배우 조은형도 인상적이었고, 특별출연한 문소리는 어마어마한 연기를 보여준다.

문소리가 나중에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무척이나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노출씬이 꽤나 많지만, 오히려 노출없이 감정선이 맞닿는 부분의 질감이 더 좋았다.

박찬욱 감독은 총을 쏠 때보다, 총을 쏠듯말듯 애태우면서 총에 맞은 것 이상의 충격을 주는데 능한 감독인데, 불친절하다는 관객들의 피드백 때문인지 유독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부분이 많았다.

감정이 급격하게 전개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생략된 부분이 많고, 간략하게 넘어가도 될 부분에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진 느낌이 있다.

 

성적에너지로 가득한 극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대한 가장 오해가 변태적이라는 수식어 같은데, 극에 필요한 성적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감독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의 영화들 중에 성적인 뉘앙스들은 하나 같이 어떤 당위를 가지고 적용되는 것이지, 그저 자극적인 묘사를 위해 쓰이지 않았다.

 

'아가씨'의 경우 설정에서부터 아예 변태적인 것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는 극이다.

오히려 이러한 설정 덕분에 두 주인공의 사랑이 더 큰 애틋함을 가지고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부당한 것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저항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만큼 멋진 일도 없다.

 

영화를 보고나왔다는 느낌보다 아름다운 것을 목격하고 나온 느낌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의 풍경 중에 손에 꼽을만큼 아름다웠다.

몇몇 장면들은 간직해서 오래오래 보고 싶을 정도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보기만 해도 두근거렸던 기억이 까마득한데, 그러한 경험을 '아가씨'를 통해 했다.

시간이 지나면 영화의 장면들 대부분이 휘발하고 작은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가씨'의 장면들이 주는 아름다움의 유통기한은 꽤나 길 것 같아서,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