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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설국열차 (Snowpiercer , 2013)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다.
마르크스가 했던 이 유명한 말을 영화화한 것이 '설국열차'가 아닐까 싶다.

김영진 평론가의 글에서도 나온 말인데, 봉준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가 목적지를 거짓으로 알려주는 버스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A에 간다고 승객을 태우고서 B에 내려준다.
승객들은 불평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가는 도중에 봤던, 도착하고 본 풍경에 얼이 빠져서 운전기사의 거짓말을 용서해줄 뿐만 아니라 감동하기까지 한다.

사실 봉준호가 했던 이런 말들은 전작들에서 훨씬 더 잘 지켜졌다.
'설국열차'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서는 노선을 훨씬 예상하기 쉽다.
특히 막판에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나누는 대화는 봉준호의 시나리오가 맞나 싶을만큼 과잉되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느낌보다, 잘 만든 헐리웃의 기성품 같다는 느낌이 더 큰 작품이다.
누가 봐도 흥미로운 영화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예카테리나 브리지 전투 장면만으로도 가치 있는 영화이다.
최첨단 시설의 열차 안에서 신석기 시대인 것마냥 횃불을 들고 싸우는 장면에서야 비로소 봉준호영화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네21에서 영화인들에게 죽기 전에 보고 싶은 영화 세 편을 뽑으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어떤 평론가는 봉준호 감독이 만들게 될 멜로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 또한 봉준호 감독의 멜로영화가 궁금해졌다.
그 어떤 장르에서도 자기색을 잘 보여주는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낸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랑인줄 알았지만 그것이 아닌, 이번에도 다른 정류장에 내려주고 시치미 떼는 그런 버스기사가 되어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