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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비버 (The Beaver , 2011)



우울증에 걸린 한 남자.
심해지는 우울증으로 가정과 사회에서도 설 자리를 잃게 되고 계속해서 자살시도를  한다.
그런 그가 우연히 손에 비버 인형을 끼게 되고, 비버 인형을 통해서 세상과 다시 소통하게 된다.
비버를 통해서 가정과 사회에서 다시 인정받게 되고, 비버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진다.

대상을 정의하는 것은 나의 태도이다.
비버인형을 비버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비버가 된다.
비버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비버는 내가 된다.
그것이 태도가 가진 힘이다.

남자에게 비버는 또 하나의 자신이다.
처음에는 비버를 통해서 변한 남자를 반기던 이들이 나중에는 남자에게 진짜 모습을 보여달라며 비버인형에 의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남자는 혼란스럽다.
우울증에 걸린 진짜 자신도 외면 당하고, 비버를 통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자신도 외면당하기에.
사람들이 말하는 진짜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힐링도 하나의 붐이다.
힐링조차도 유행이 되어서 힐링을 경험하지 못하면 죄인이 된 기분이다.
'비버'는 그런 힐링 열풍에 대해 확고하게 말한다.
주변 사람을 배려한답시고 치유된 척 사는게 아니라 자신이 우울함을 인정하고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옳다고.
어차피 지금 터진 문제를 아닌 척 미뤄둬봐야 나중에 터지게 되어있다.

조디 포스터의 연출작이다.
'양들의 침묵'의 여주인공이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조디 포스터 말이다.
배우 출신이라서 그런 것일까, 연기 디렉팅이 좋은 영화임을 느낀다.

멜 깁슨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주름 가득한 얼굴로 감정들을 전달한다.
안톤 옐친이 보여주는 일련의 표정은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다.
아버지와의 갈등과 관련된 다양한 디테일들은 그의 연기 덕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좋은 드라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제니퍼 로렌스까지.
제니퍼 로렌스는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이 큰 장점인 것 같다.

전사를 빠르게 처리하고, 갈등도 빠르게 전개시킨 덕에 진행 자체가 빠르게 느껴져서 몰입하기 좋았다.
특히 밝아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어둡게 느껴지는 전반부와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생략을 많이 사용한 후반부의 템포가 좋았다.
후반부가 갑작스럽게 느껴짐에도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생략된 부분이 관객들의 감정으로 충분히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부모와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안톤 옐친이 연기한 포터 캐릭터가 정말 인상적이다.
우울증 환자의 아들이자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습관들을 적어두고 그것을 버리기 위해 여행을 떠나려는 청년.
포터의 여정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영화가 더 슬프게 다가왔다.

포터는 아버지와 포옹한다.
슬펐다.
비버인형을 통해서 모든 것이 치유된 척 행동하는 남자처럼, 어쩌면 포터도 주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마음이 치유되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치유되었다고 믿고 주변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관계의 회복일까.
포터는 보이지 않는 비버인형을 끼게 된 것이 아닐까.
진짜 자기 마음을 영원히 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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