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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베이비 드라이버 (Baby Driver , 2017)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물었을 때 나올 말이 정말 많지만, 에드가라이트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만큼 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감독도 드물다.

'뜨거운 녀석들'과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좋아하는데, 특히 사회비판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내는 그의 방식이 좋았다.

고어성향조차도 영화의 서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은 리듬의 문제이고 에드가라이트는 리듬을 정말 잘 아는 감독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리듬의 영화다.

카체이싱 혹은 케이퍼 무비, 성장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전까지 느낀 에드가라이트의 장점인 리듬을 고스란히 유지하되 장르적으로는 새로운 시도를 해서 흥미로웠다.

분노의 질주를 동력으로 삼아 달리는 라라랜드 같다는 설명은 좀 거친 요약이 될 것이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지만 오히려 친절한 설명으로 전개되었다면 매력이 떨어졌을 영화다.

매력적인 두 남녀의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만 남녀가 서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추측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정보가 협소해서 몰입이 쉽지 않다.

거의 윤대녕 소설 속 별 말도 없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여자들이 떠오를 정도였다.


너무나 현실적인 엔딩은 이 영화의 속력을 단숨에 정지시키다 보니 다소 벙 찌게 하는 면이 있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영화 내내 덩실거리던 속도감에 몸을 맞추던 관객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면도 있다.


음악이 너무나도 중요한 영화다.

영화적 리듬에 있어서 이 영화는 분명 만점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리듬에 온전히 빠지게 하는 영화다.

뮤지션이 꿈이라는 식의 설정을 안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클리셰를 탈출하는 법을 너무 잘 아는 영화다.


본인이 들었던 말을 녹음해서 음악과 리믹스하는 설정이 재밌다. 

자신의 자존을 결정 짓는 타인의 언어와 본인이 가장 사랑하고 몰두가능한 음악을 섞는 일종의 사회화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을 짓밟는 말도 음악 속에 넣어 버리면 그저 하나의 음악이 되어버릴 수 있으니까.

꿈 같이 붕 떠있는 사랑도 자신의 음악 안에서 하나의 리듬이 되어주니까.


속도, 음악, 사랑 모두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과 분리되어있는 엔딩씬의 교도소는 삶에 대한 도피처가 되어서 오히려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할 것이다.

이젠 음악이 없어도, 속도가 없어도 자신의 리듬을 찾아갈 테니, 라고 베이비를 위로하고 싶다.

마치 윤이형의 소설 '루카' 속 에성처럼, 베이비로 기억될 '마일드'를.